"하늘은 언제나 무심했지만 살아날 바늘구멍도 만들어주었단다."
'옥영'의 결연한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남편 '최척'을 찾아 나서는 목숨을 건 항해. 온 가족을 갈라놓은 전란은 거대한 파도처럼 삶을 집어삼켰지만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물줄기는 막지 못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이 열렸다. 지난해 초연한 서울시극단의 '퉁소소리'는 조선 중기 문인 조위한이 쓴 소설 <최척전>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남원 출신의 최척 일가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명·청 교체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30년 만에 기적적으로 재회하는 이야기다.
이날 무대 위에서 특히 돋보인 건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였다. 옥영은 부모가 맺어준 사람과 혼인을 올리는 대신 직접 남편감을 고른다. 전란 속에선 남장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고 남편을 찾아 항해에 나설 땐 일본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는 유능하면서도 강인한 인물이다.
옥영의 며느리 '홍조'도 마찬가지다. 연습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그의 중국어·일본어·한국어 대사 "메이꽌시, 다이조부, 괜찮아"는 배를 빼앗겨 좌절한 옥영을 다시 일어서게 한 위로이자 가족과의 재회를 향한 주문이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은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모티브 자체가 여성 캐릭터들"이라며 "이런 주체적인 인물이 없었다면 드라마에 추진력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은 "살아있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전쟁의 비극성을 드러낸다. 고 연출은 "전쟁으로 타인의 삶을 억압하고 침범할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며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대가족의 서사답게 총 20명의 배우가 무대에 올라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퉁소·해금·가야금 등 현악 파트를 보강한 6인조 라이브 연주도 몰입감을 더한다.
'퉁소소리'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꼽혔고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선 백상연극상을 수상했다. 고 연출은 "군살처럼 느껴지는 부분을 조절하고 호흡이나 리듬감을 배우들과 조율했다"며 "지난번보다 이번 공연이 더 좋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공연은 오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이어진다.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