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노력’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 때론 긍정하지 않는 것이 윤리다[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5 days ago 15

〈123〉 함부로 긍정 말하지 않기 이란희 감독의 영화 ‘3학년 2학기’는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중소기업 공장에서 보내게 된 실업계고 학생들의 얘기를 다룬다. 실습 현장에는 안전 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나는 되도록 스크린에 가까운 앞자리에서 영화를 본다. 거기에 앉으면 스크린도 크게 보일 뿐 아니라 영화가 끝나면 빨리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간혹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영화, 누가 함께 봤을까 하는 궁금증에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크게 알려지지 않은 좋은 영화를 소수의 관객끼리 보았을 때는, 함께 본 사람들 간에 무언의 동지애가 생기니까. 이란희 감독의 영화 ‘3학년 2학기’가 바로 그런 영화였다. 제작진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나자,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예닐곱 명에 불과한 관객이 있었다. ‘3학년 2학기’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고교 졸업 학기를 지칭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소년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시기를 지칭한다. 제목 그대로 영화는 실업계 혹은 특성화고 청소년이 한국 사회에 진입하는 단계를 직접적으로 탐구한다. 진로를 고민하는 고교생들의 대화로 시작해, 그들이 좌충우돌하며 사회의 맛을 보고, 마침내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요즘 실업계 혹은 특성화고 학생의 현황이 궁금한가. 그러면 이 영화를 보길 권한다. 해당 고교생을 가족이나 지인으로 두지 않은 한, 요즘 그 세계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3학년 2학기가 시작한 이즈음에 보길 권한다. 나의 고교 시절에는 교외 클럽활동을 통해 실업계 친구나 선후배들과 어울릴 일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강북 청소년이던 내가 재개발 이전 서울 관악구 난곡을 경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찬 바람이 세차게 불던 수십 년 전 난곡의 벌판은, 재개발이 오래전에 끝난 오늘날 난곡에는 흔적도 없다. 오늘날 인문계 고교생에게 상시적으로 실업계 고교생을 만날 기회가 있을까. 영화 ‘3학년 2학기’를 통해 미뤄 보면, 없을 것 같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나올지언정, 비실업계 고교생은 단 한 명도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가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주인공 창우가 실업계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아버지가 세 자녀를 두고 일찍 죽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엄마는 세 자녀를 혼자 힘으로 길러야 한다. 여기에 가난의 뿌리가 있다. 혼자 남은 엄마는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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