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노벨상 학자 R&D예산까지 깎자 동요… “韓, 인재 데려올 기회”

4 days ago 2

[과학기술 인재 엑소더스] 〈하〉 국가 미래 달린 ‘브레인 리쇼어링’
美 이공계 유학생 등 대거 ‘FA’시장에… 유럽-亞, 기금 마련 등 인재 유치戰
재미 한인과학자 47% “일자리 위협”… “과학계 허리 부족한 한국에 기회
젊은 인재 잡아 과기 경쟁력 강화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미국 내 과학자들의 이탈이 본격화되자 이들을 자국으로 유치하려는 글로벌 각국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공계 두뇌 유출이 심각한 한국으로선 재미 과학자들의 리쇼어링(국내 복귀)으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 노벨상 수상자도 피하지 못한 美 예산 감축

“노벨상 수상자까지도 R&D 예산이 크게 줄었다. 그 연구실 학생들도 동요하는 분위기다.”

“대학, 연구기관의 연구자 고용이 대부분 중지됐다.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일자리를 잡기 어려워지는 과학자들이 대거 발생할 것 같다.”

최근 본보와 인터뷰한 재미 과학자들은 현재 미국 과학계가 처한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미국 내 최대 R&D 연구지원기관인 국립과학재단(NSF)과 국립보건원(NIH) 등의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되면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공계 유학생 및 박사후연구원, 비정규직 과학자들이 대거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올해 3월까지 미국 내 과학자들이 해외 일자리에 지원한 건수는 전년 대비 32% 늘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 조치로 NIH와 NSF는 각각 18억1000만 달러(약 2조5025억 원), 7억3900만 달러(약 1조220억 원)에 달하는 연구 보조금이 중단됐다. 지난해 단백질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AI) 개발에 기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조차 해당 기관들로부터 받는 R&D 지원금이 크게 축소돼 일부 연구에 지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A 과학 인재 잡자”… 글로벌 유치전 치열

세계 각국은 미국을 벗어나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 나온 과학 인재들을 자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미 싱가포르는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인재 영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물밑 작업에 나섰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재료공학과 교수는 “이미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교수 2명이 오기로 했고, 추가적으로 협상하고 있는 교수도 있다”며 “대학 측에서 미국에서 빠져나오는 학생 및 연구자를 영입하기 위해 2700억 원 규모의 기부금을 마련하고 전략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홍콩과 일본은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하버드대 유학생들을 정조준해 지원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홍콩과학기술대는 하버드대 유학생에게 특별 장학금, 숙박 지원, 학점 인정 등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도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하버드대 유학생이 발생하면 일본 대학이 받을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검토하라고 각 대학에 요청했다.

유럽연합(EU)도 미국을 떠나는 과학자 유치를 위해 2027년까지 5억 유로(약 7767억 원)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호주 역시 지금이 해외 과학자 유치를 위한 가장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고 이들을 영입하기 위해 각종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재미 과학자 리쇼어링으로 경쟁력 확보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에 신분이 불안해진 것은 미국 내 한인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14∼26일 재미 과학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83명 가운데 소속 기관에 예산 삭감이 이뤄진 경우는 73.5%(61명)에 달했고, 47.0%(39명)가 예삭 삭감으로 일자리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정규직 연구원이거나 종신직(테뉴어) 대학 교수를 제외한 응답자가 50명(60.2%)인 것을 감안하면 비정규직 재미 과학자의 약 80%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번 설문에 응답한 한 연구자는 “갑자기 예산이 삭감돼 수십 년간 해온 연구를 2주 만에 접어야 하는 경우도 봤다”며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하반기부터는 비자 문제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한인 과학자가 상당히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한인 과학자들의 국내 복귀가 ‘허리 역할’을 맡는 박사후연구원, 젊은 연구자가 부족한 한국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윤영 숙명여대 기계시스템학부 석좌교수는 “우리나라가 특히 부족한 인재풀이 박사후연구원이다. 연구를 하려고 해도 박사후연구원이 부족해 제대로 못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번 기회에 젊은 인재들을 잘 붙들어 놓을 수 있으면 국내 과학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미국에서 일자리를 잃는다면 한국으로 돌아오겠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 과학자도 33.7%(28명)로 적지 않았다. 이들은 국내 복귀를 꺼리는 이유로 △낮은 연봉(39.3%) △양질의 일자리 부족(35.7%) △연구 자율성 부족(7.1%) 등을 꼽았다. 이 밖에 ‘국내 이주 및 연구 정착 지원금 문제’ ‘신진 연구자 지원 과제 부족’ 등도 언급됐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조교수로 재직하다 1년 전 KAIST로 자리를 옮긴 강성훈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신진 연구자가 새로운 곳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만큼 정착 연구비를 늘려 준다면 과학자 유입이 늘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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