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는 무형적 사회간접자본… 푸드-뷰티 수출 도로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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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내공의 수출 히든카드 K컬처] 〈1〉세계가 듣고 먹고 바른다
세계 12개 나라 6800명 조사
85% 주 1회 이상 韓음악 청취
8%는 “매일 K푸드 먹는다”

“어떡해….” “가지마!”

지난달 10일 오후 7시 일본 도쿄 지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린 ‘케이콘 재팬 2025(KCON JAPAN 2025)’. K팝 그룹 ‘보이넥스트도어’의 무대가 끝나자 일본인 관객들이 한국어로 이렇게 외쳤다. 이들은 케플러, 이즈나, 예나 등 K팝 가수들의 한국어 노래를 ‘떼창’하고 “사랑해”, “멋있어요” 등을 한국어로 외치며 열광했다. 이시카와현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는 이나가키 호노카 씨(20)는 “X(구 트위터)에서 ‘보넥도(보이넥스트도어)’ 공연 영상을 우연히 보고 팬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버시티파크에 있는 랄프스 매장 내에 마련된 아시아 식품 전용 매대 ‘아시안 데스티네이션’에서 한 미국 소비자가 비비고 만두를 살펴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이민아 기자 omg@donga.com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버시티파크에 있는 랄프스 매장 내에 마련된 아시아 식품 전용 매대 ‘아시안 데스티네이션’에서 한 미국 소비자가 비비고 만두를 살펴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이민아 기자 omg@donga.com
K팝에 대한 관심은 K푸드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지난달 13일 오후 10시(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유니버시티파크의 현지 식료품 체인점인 ‘랄프스’에 마련된 아시아 음식 전용 매대 ‘아시안 데스티네이션(구역)’ 앞. 대학생 알리 에르그드너 씨(23)가 CJ제일제당에서 생산한 찐만두를 고르고 있었다. 그는 “K팝 그룹인 스트레이키즈의 팬이 됐고,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이 궁금해졌다”며 “만두뿐 아니라 김치, 떡볶이, 참기름, 고추장 등 한국 음식, 식재료를 일주일에 한 번은 먹는다”고 말했다. 한국 수출의 ‘무형적 사회간접자본(SOC)’으로 K컬처의 역할이 급부상하고 있다. 식품,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산업들은 K컬처라는 무형의 인프라를 타고 해외로 나가 승전보를 울리고 있다. 도로라는 인프라가 생기면 자동차 판매가 늘고, 화물차를 이용한 물류 산업이 발전하고, 접근성이 좋아진 지방에 관광 산업이 발전하는 원리다.

● “한국 무역의 히든카드”

1995년 CJ의 영상산업 세계 진출 선언을 기점으로 K컬처는 30년 내공을 길러 왔다. K컬처에 열광하기 시작한 전 세계 소비자들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를 맛보고, 블랙핑크 제니가 미국 인기 토크쇼에서 ‘최애 과자’로 언급한 ‘바나나킥’을 궁금해하고 있다. 이 토크쇼 이후 농심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CJ그룹이 전 세계 12개국(24개 도시)에서 15-49세 소비자 6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K컬처 이용 경험이 있는 글로벌 소비자의 절반(55%)이 주 1회 K푸드를 사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85%가 주 1회 이상 K팝을 듣고, 60%가 주 1회 이상 K콘텐츠를 시청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CJ그룹 관계자는 “전 세계인이 매년 2∼3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달 1∼2번씩 한국 음식을 먹고, 매주 1∼2편의 한국 드라마를 보고, 매일 1∼2곡의 한국 음악을 듣게 하겠다는 이재현 회장의 불가능해 보였던 꿈이 결국 현실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프랑스를 제치고 수출국 1위 자리를 꿰차고, 일본 내 수출 1위국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K뷰티 역시 K컬처 인프라 확장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는 산업군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20.6% 증가한 102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지난달 8일 일본 도쿄 시부야의 ‘로프트’ 매장에서 만난 대학생 모모카 씨(18)는 “틱톡에서 한국 아이돌, 인플루언서의 메이크업을 보고 ‘나도 저렇게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K뷰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K컬처 경험 푸드·뷰티 등과 상호 연결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발(發) 관세 전쟁 속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기존 수출 효자 품목이 큰 타격을 입는 가운데 K컬처는 무형적 사회간접자본으로서 경제 위기 속 한국 무역의 ‘히든 카드’가 됐다. CJ그룹이 2022년부터 2024년까지의 글로벌 K컬처 연관 키워드를 뽑아 분석한 결과, 해외 소비자들 사이에 K컬처 경험은 K푸드, K팝 등을 넘나들며 상호 연결되는 경향을 보였다.

예컨대 방탄소년단의 음악으로 시작된 K팝 선호가 멤버 ‘진’의 전역을 기념해 출시된 ‘비비고’ 신제품 키워드로 이어지며 K푸드까지 확장됐고, 그것이 다시 ‘김치’, ‘매운맛’ 등으로 연결되는 식이다. 블랙핑크 제니에 대한 관심이 그가 모델로 있는 ‘젠틀몬스터’ ‘탬버린즈’ 등의 브랜드를 알게 하고, K패션과 K뷰티로 확장되는 식이다.

2019년 미국에서 냉동식품 업체 ‘슈완스’를 2조 원을 들여 인수하면서 북미 시장에서의 K푸드 확산에 앞장선 CJ제일제당은 미국 매출이 지난해 4조7138억 원으로 2018년 대비 약 13배 증가했다. 11일 미국에서 만난 CJ제일제당의 미국 자회사 ‘슈완스’의 페데리코 아레올라 브랜드마케팅 경영리더는 “K컬처로부터 굉장히 많은 수혜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 K뷰티, K푸드는 저렴하면서도 개성 있고 품질까지 갖춘 상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세계인이 매력적으로 느끼고 찾아보고 싶은 상품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드라마와 영화 같은 K콘텐츠의 힘이 컸다”며 “콘텐츠에 노출된 것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직접 K브랜드를 경험해 보게 만드는 일종의 ‘씨앗’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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