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판례를 찾아주고 변호사 수가 4만명을 넘은 지금 로펌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2019년 봄 대한민국 최고의 IT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AI가 법조인을 대체할 것인지’ 물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전문가들은 AI가 전문직 특히 법조인을 대체하는 것은 적어도 수십 년 후의 일이라고 단언했다. 질문자가 ‘바둑도 컴퓨터가 사람을 이길 수 없을 줄 알았다’(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2016년)고 반박하자 ‘바둑은 경우의 수가 많을 뿐 규칙은 단순하다. 규칙 자체가 많고 복잡한 영역에서는 갈 길이 멀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AI가 풀지 못하는 법의 미로
그 분들이 2026년에도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법조인이 다루는 규칙이 복잡하고 많은 것은 분명 사실이다.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법률 조항만 따지더라도 2025년 8월 기준 1069개 법률에 벌칙 조항 1만1165개, 처벌대상 행위는 1먼7355개에 달한다.
그런데, 벌칙 조항 중 단 한 번도 적용되지 않은 조항이 상당수 있다(필자는 대검찰청에서 2년간 형사사법 관련 통계 업무에 관여했다). 판례가 없는 것은 물론 검찰, 경찰, 특사경에서 입건 자체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아 참고할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적용례도 존재하지 않는 처벌 조항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니 판례를 빨리 찾는 것만으로는 개별 법률 조항의 적용도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
여러 법률의 적용범위가 중첩되거나 규정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문제는 한층 어려워진다. 바둑판은 가로/세로 각 19줄 뿐이지만 바둑의 모든 경우의 수(약 10의 170제곱)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약 10의 80제곱)보다 훨씬 크다고 하는데, 수만 개의 법률 규정들이 얽히어 빚어내는 쟁점들은 얼마나 많을까.
경계를 넘어 충돌하는 법과 규칙
선거철이니 선거와 관련된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면, ‘공직선거법의 적용을 받는 선거유세차량은 자동차관리법의 적용도 받는가’는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실무에 혼선이 있었다. 2022년(!)에야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판결(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22. 8. 25. 선고 2022고단864 판결)이 선고되고, 2024년 자동차관리법 개정으로 ‘선거유세차량 일시적 튜닝 승인제’가 도입되면서 해결되었지만, 이렇게 해결되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법조인들을 여전히 괴롭히는 쟁점들은 많고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은 쟁점들도 무궁무진할 텐데, 최근에는 재판소원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쟁점과 헌법이 교차하는 더욱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행정소송에서 ‘소의 이익’ 요건은 이제 재판청구권 침해라는 헌법적 시각에서도 검토해야 한다.
이처럼 법조문이나 판례 검색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여러 법률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탐구하고 개척해야 하는 복합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최근 필자가 소속된 법무법인에서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예로 들어 보겠다. 이 의견서는 행정절차법, 행정소송법, 민사소송법, 자본시장법, 근로복지기본법, 조세특례제한법, 방송법, 방통위법 등 일견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수의 법률과 규칙, 훈령, 예규, 고시를 근거로 제시하고, 쟁점과 관련된 독일, 프랑스, 일본의 현행 법률, 입법 연혁, 판례 및 법리 논쟁을 설명했다. 핵심 쟁점에 대해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 사건에서 법원이 정당한 판결을 내리도록 설득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학술 논문에 필적하는 논거를 치밀하게 제시한 것이다.
융합적 해법이 만드는 로펌의 미래
송무를 넘어 자문업무를 생각하면,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협업하고 개척해야 할 영역은 얼마든지 더 있다. 해외투자를 추진하는 헬스/바이오 분야 고객사를 위해 의약, 외환, 국제조세, 개인정보 등 온갖 규제의 지뢰밭을 무사히 돌파하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고, 경영권 분쟁에 처한 고객을 위해서는 상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형사 이슈 등을 아우르는 조력자가 된다. 때로는 유명인사를 위해 ‘사회적 물의’나 ‘브랜드 훼손’ 등 법조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다루기도 한다.
결국 AI가 판례를 찾고 수만 명의 변호사가 경쟁하는 시대에 로펌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융합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입법자조차 보지 못한 법률 간의 충돌과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정밀한 분석과 협업을 통해 차별성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시장을 선도하는 로펌이 제공하는 차별성 있는 서비스가 될 것이다. 바둑판보다 훨씬 넓고 복잡한 세상에서 법률 전문가들이 개척해야 할 미지의 영역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가온 프런티어 리포트]에서는 행정규제 대응, 엔터테인먼트, 국제거래 등 여러 분야에서 로펌의 업무로 새롭게 개척되는 영역과 다양한 법률이 중첩, 융합되는 이슈를 소개하고 시사점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권기대 변호사는 조세·금융·외환·자금세탁 관련 범죄와 행정형벌 분야의 전문가로 현재 법무법인 가온의 행정규제 대응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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