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가 개교 80주년을 맞는다. 서울대의 80년은 수많은 질문과 함께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김동은 매일경제 사회부장과 대담에서 “대학의 역할은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궁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오늘날 서울대는 인공지능(AI)과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문들을 마주하고 있다.
유 총장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질문이 나오고 있고, 또 나와야 할 시기”라며 “AI와 지역인재 육성 등 대학을 둘러싼 담론이 너무도 빨리 바뀌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서울대도 단순히 엘리트를 위한 교육기관이 아닌 사회 전체와 연결되는 공공적 지식공동체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 총장은 “앞으로는 서울대의 성과가 내부에 머무르는 대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만들어 사회에 환원하겠다”라며 “2027년부터 해외 연수와 공동연구 사업 등에 다른 거점국립대 학생들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지역 인재 육성과 국가 혁신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유 총장 인터뷰는 지난 2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총장실에서 진행됐다. 아래는 일문일답.
―지금 시대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학은 더 이상 초중등 교육 이후 이어지는 하나의 교육기관에만 머물 수 없다. 지금 대학은 국가 경쟁력과 성장동력을 만드는 핵심 기관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나 ‘성장엔진’ 같은 표현이 나오는 것도 대학의 역할이 교육기관을 넘어 국가 성장엔진 구축으로 확장되고 있어서다.
외국에서도 대학은 혁신 생태계의 엔진 역할을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스탠퍼드, 보스턴 클러스터와 하버드·MIT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대학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한국도 대학이 국가 미래와 연결됐다고 인식해야 한다.
―서울대는 한국의 성장엔진 역할을 수행해왔나.
▷서울대가 사회적 기대를 충족했는지에 관해선 내부적으로도 깊이 성찰하고 있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보다 격차를 재생산하는 구조가 됐다거나, 사회적 약자와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충분히 포용하지 못했다는 지적 등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교육·연구 성과가 사회적 가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다. 이제라도 ‘사회 공헌’은 선택사항이 아닌 대학 본연의 기능으로 봐야 한다. 서울대가 보유한 지식과 인프라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공적 기능도 필수다.
―공적 기능을 실천할 방안은 무엇인가.
▷거점대학들을 위한 협력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2024년부터 핵융합, SMR, 항공우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울대가 보유한 희소 장비와 실습 프로그램을 지역 학생들에게 제공 중이다. 현재까지 30여개 지역대학에서 2024년 455명, 2025년 800여명의 학생들이 혜택을 봤다. 더 나아가 서울대를 중심으로 거점대와 인도 23개 국립 공과대학과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AI로는 예습·보완, 수업 때는 토론·질문해야
―AI 시대를 맞아 서울대는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나.
▷AI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속도를 맞추고자 학생들이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어떤 범위에서 쓰는지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는 서울대 학생들이 AI를 주로 ‘도서관’처럼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친구’보다는 지식에 빠르게 접근하는 도구로 보는 것이다. 그에 맞춰 교육 방식도 바꾸고 있다. 앞으로는 학생들이 AI를 활용해 사전에 필요한 지식을 학습하고, 수업 시간에는 토론과 질문을 통해 더 깊이 배우는 방식이 보편화될 것이다.
―변화에 맞춰 서울대 교수의 인재상도 변화할까.
▷대학 차원에서 정한 ‘교수 인재상’은 없다. 분야마다, 교수마다 강점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는 연구를 잘하는 것에 더해서 연구와 교육을 서로 연결하는 역할이 교수에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임용이나 평가 기준에서 교육과 연구 비중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대신, 각자 장점에 따라 어떤 교수는 연구에, 어떤 교수는 교육에 더 무게를 두도록 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AI 분야에서 빅테크와 협력은 없나.
▷엔비디아,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을 추진 중이다. 특히 엔비디아는 지난 4월 매디슨 황 수석 이사의 방문을 계기로 AI 협력에 대한 공감대가 생겼다. 단순 인적·물적 교류를 넘어서 대학의 연구성과가 산업계로 빠르게 확산해야 한다. 동시에 산업계가 가진 어려움도 대학의 연구를 통해 서로 AI 연구 파이프라인의 처음과 끝을 잇길 기대한다.
―교원, 학생 등 구성원 간 AI 역량 격차는 없나.
▷물론 존재한다. AI 활용 역량은 앞으로 학습과 성장의 격차로 이어질 것이다. 이에 교육·연구·행정 전반을 AI 기반으로 전환하려 한다. AI대학원 설립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가 AI를 중심으로 융합되게 함은 물론, 행정 전반에 AI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업무용 AI 서비스 41개를 자체 제작해 활용 중이다. 이르면 오는 6월부터는 생성형 AI 서비스를 학내 구성원 3만9000여명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대학 연구, 사업화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일부 산업계에서는 서울대 졸업생은 뛰어난 기초 역량에 비해 현장 적응력이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부당한 편견이라기보다 대학 교육이 보완할 과제라고 본다. 이에 서울대도 산학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한 현장 문제 해결형 교육을 강화 중이다. 다만 기업과 대학은 목표와 속도가 다르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대학 내부의 제도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산학협력 활성화를 위한 연구소 간담회를 올해만 5회 개최했다. 공통적으로 기업에 비해 대학의 대응과 행정 속도가 느리단 지적이 나왔다. 이를 반영해 산학협력의 신속성과 실행력을 강화할 조직을 올해 안에 신설할 계획이다. 산학 프로젝트에서 연구인력을 더 유연하게 활용하도록 겸직 규정 등도 개선하고자 한다.
―내부에서 창업을 향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
▷서울대가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역할을 해내길 기대한다. 서울대기술지주는 현재까지 14개 펀드, 약 1100억원의 투자자산을 운용 중이다. 오는 7월까지는 학내 단과대학들과 협업해 총 150억원 규모의 신규 펀드를 결성할 예정이기도 하다. 여기에 선배 창업자들은 물론, 11개 지역대학의 창업지원단과 협력을 강화해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대학의 연구 성과가 기술 사업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실리콘밸리 정신은 어떻게 가르칠 수 있나.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학부대학, 국제처, 공과대학 등 여러 조직에서 학생들을 위한 실리콘밸리 현지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특히 내년부터 다른 거점국립대학과 공동 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공동창업을 모델로 학생들이 다양한 협력 경험을 토대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공동체 회복’이 주요 목표…‘관료적 시스템’은 한계
―2023년 시작한 임기도 마무리되는 중이다. 임기 중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
▷학내 구성원의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일이었다. 임기 중 추진한 기숙형대학(LnL)의 핵심 성과도 공동체 회복이다. LnL은 학생들이 소규모 공동체를 이뤄 함께 규칙을 만들고 배울 것을 찾게 하는 프로그램 위주로 구성됐다. 그 결과 지난 2월 이뤄진 설문에서도 LnL 학생의 75%가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추구하게 됐다’고 답했다. 일반 기숙사생(52%)보다 공동체 의식이 커진 셈이다. 이처럼 공동체 의식이 학내 구성원 전반에 퍼진다면 자연스레 서울대도 공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기대한다.
―내부 반대는 없었나.
▷대규모 공사나 기숙사 입사 기회 축소에 대한 불편도 물론 제기됐다. 자원 배분의 형평성을 두고 민감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리적인 불편함은 피할 수 없으며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감수할 수 있는 정도의 불편이라고 판단한다.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학생 의견을 정기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총장으로서 체감한 내부적인 한계는 없었나.
▷경직되고 관료적인 운영 시스템이다. 특히 의사결정 구조가 무척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선 학사위원회, 평의원회, 이사회 등 여러 기구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 탓에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각 단과대학이 강한 자율성을 가져 서로 분절된 듯한 모습도 보인다. 예컨대 A단과대의 교과목 신설을 B단과대가 반대해 막거나, 대학원생 충원을 수년째 못 하는 학과도 조교 1명을 못 줄이는 경우도 많다.
―해결 방안은 없나.
▷각 기구와 단과대의 자율성은 존중하되 서울대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에는 본부가 책임 있게 조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의사결정이 느린 것은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포용해야 할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의사결정에 패스트트랙 절차를 도입하고 제도혁신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민첩한 조직 운영으로 보완하는 게 진정한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유홍림 총장은…
△1961년 충북 청주 출생 △1984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86년 서울대 정치학과 석사 △1994년 미국 럿거스대 정치학 박사 △1995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16~2018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학부장 △2020~2022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장 △2023년~ 서울대 제28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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