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기다려야할 판"…AI산업 폭발에 글로벌 '전력망 비상' [글로벌 머니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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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기다려야할 판"…AI산업 폭발에 글로벌 '전력망 비상' [글로벌 머니 X파일]


요약
·글로벌 전력망 접속 지연 확산
·데이터센터·AI 수요 급증 영향
·산업 전반에 비용 부담 증가

최근 세계적으로 전력망 접속 지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데이터센터 급증과 전기차·인공지능(AI) 수요 등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하면서다. 신규 발전소나 대규모 전기 사용 설비를 전력망에 연결하려면 수년씩 기다려야 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데이터센터 신축 거부

24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 ‘에너지와 AI'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 곳곳에서 건립이 확정된 데이터센터의 약 20%가 심각한 가동 지연 위험에 처해 있다. 해당 지역에서 전력 개발업체들이 최대 10년에 달하는 전력 연결 대기 시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 중 하나인 미국 버지니아주 북부에는 평균 7년, 독일도 비슷한 대기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는 평균 10년까지 걸린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도 전력망이 포화해 2028년까지 데이터센터 접속 신청을 받지 않을 정도다.

영국 정부는 지난 4월 “현재 기업들이 최대 15년씩이나 전력망 연결을 기다려야 하는 ‘그리드록’ 상황'"이라며 "지난 5년간 전력 접속 대기 신청이 10배 급증했다"고 밝혔다.

"10년 기다려야할 판"…AI산업 폭발에 글로벌 '전력망 비상' [글로벌 머니 X파일]

영국에서는 2035년까지 730GW 이상의 발전 프로젝트가 대기 중이다. 일부는 최대 15년 후인 2030년대 중반에야 전력 연결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드 밀리밴드 에너지안보부 장관은 “너무 많은 기업이 필요한 청정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가로막히는 전력망 정체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2023년 말 기준 약 2600GW에 달하는 발전·저장 용량이 계통 연결을 기다리고 있다. 95%는 태양광·풍력·배터리 등 청정에너지다.

유럽 도시권 역시 전력망 용량 부족으로 산업 투자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및 투자 회사 CBRE에 따르면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암스테르담 등 유럽 4대 데이터센터 시장은 전력 확보의 어려움으로 신규 데이터 센터가 증가율이 감소했다. 2023년 1분기 20%에서 지난해 1분기 7.2%로 감소했다. 암스테르담의 경우에는 최근 신규 공급이 없었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싱가포르는 전력·탄소 제한으로 한때 데이터센터 신규 인가를 중단했다. 일본 등도 도심 인근 전력망 용량이 한계가 임박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도권에서는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 산업단지 계획이 전력 공급 용량 문제에 부딪혀 논란이 되고 있다.

에너지 비용 급등

발전 용량 예비율 부족과 전력 용량 요금의 급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전력망 인프라 투자가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다. 용량 요금은 전력 수요 피크 시 안정적 전력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발전기 등에 지급하는 비용이다. 전력 시장에서 공급 부족 시 급등하는 경향이 있다.

북미 최대 미국 전력망 운영업체인 PJM의 경우에는 최근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과 10년 이상의 인프라 공급 축소가 겹치며 용량 시장에서 공급 부족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2025~2026년 전력 용량 경매 가격이 전년 대비 800% 이상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PJM의 용량 요금(MW 기준)은 1년 새 28.92달러에서 269.92달러로 뛰었다.

최근 2026~2027년 경매에서는 사상 최고치인 329.17달러를 기록했다. 이전보다 22% 정도 상승했다. 글로벌 독립 투자은행 에버코어(Evercore)의 니콜라스 아미쿠치 애널리스트는 “전력수요 증가가 신규 발전 투입 속도를 계속 앞지르고 있다”며 "향후 몇 년간 공급난에 따른 높은 용량 비용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PJM 경매 결과로 발전기업 주가가 5~9% 급등하는 등 발전 용량 부족이 전력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분석이다.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의 제시 에이드보 고문은 “PJM이 최저 비용으로 신뢰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에서 어긋났고 개혁 없이 우리 지역사회에 실패를 안겼다”고 비판했다.

재생에너지 인프라 연계 지연이 용량 요금을 밀어 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PJM은 “이미 46GW 규모의 발전소(대부분 태양광) 연결을 승인했지만 이는 지역망 용량 부족 등으로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10년 기다려야할 판"…AI산업 폭발에 글로벌 '전력망 비상' [글로벌 머니 X파일]

유럽도 상황이 비슷하다. 영국의 전력 용량 시장에서 2027~2028년도 공급분 입찰가는 역대 최고치인 65파운드/kW에 형성됐다. 직전 기록을 또다시 경신한 수치다.

해당 경매에서 목표 용량(44GW)보다 2000MW가량 부족한 공급만 확보되자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오는 2028년에 전력 수요 피크 시 7.5GW의 공급 부족 ‘에너지 크런치’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전력망 증설 지연과 노후화도 심각하다. IEA는 “현재 전 세계 그리드 투자(연간 약 4000억달러)는 발전·전기화 투자에 비해 현저히 적고 이는 전력 안보의 위험 요소”라고 지적했다. IEA는 2030년대 초까지 송배전 투자를 발전 설비 투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두 배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송전선로 건설에는 8년 이상 걸리고, 변압기·케이블 등 핵심 장비의 공급망 병목에 따른 지연이 겹쳐 투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투자 지연과 설비 확충 한계가 용량 요금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전방위로 산업 직격탄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데이터센터·반도체·AI·전기차 산업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전력망 제약과 용량 비용 상승으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커지면서다. 이들 산업은 전력 비용이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미국에선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난이 부각되자, 일부 데이터센터 기업은 필요 전력을 자체 조달(온사이트 발전 등)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영국에서는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첨단 산업의 전력 수급 애로가 심각해 정부가 전력망 연결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있다.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면 데이터센터 운영비용 상승은 물론 클라우드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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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유럽 에너지 위기 당시 일부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들은 고객 요금을 올리거나 고정 가격 계약을 포기하고 실시간 전력비 연동제로 전환하기도 했다.

반도체 제조업 역시 고품질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산업이다. 전기 요금 상승에 민감하다. 미국 내 신규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애리조나주 등지에서는 전력 부족으로 지역 사회와 전력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기차 산업도 전력망 이슈에 민감하다. 전기차 보급이 확대할수록 충전 인프라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역 배전망 용량 부족으로 고속충전기 설치가 지연되는 곳이 늘고 있다. 전기료 인상은 전기차 운전자의 충전 비용 부담을 키워 전기차의 경제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2022년 유럽에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을 때 가정용 전기차 충전 비용이 크게 오른 적이 있다. 다만 여전히 대부분 전기차 운행 비용이 내연 자동차보다 저렴하지만 해당 격차 축소는 소비자 구입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규모 AI 모델 훈련 등이 필요한 AI 산업은 전력 집약적으로 에너지 비용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을 전망이다. 최근 MIT 분석에 따르면 AI 서비스까지 포함하면 데이터센터가 2030년 세계 전력수요의 20% 이상 차지할 수도 있다.

만약 전력망 제약으로 전기 요금이 지속 상승하면 AI 연구개발 비용과 빅테크 기업의 운영비도 증가해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 시장과 투자 흐름에도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관련 인프라 자산에 대한 투자 매력이 커졌다. 전력망 부족으로 용량 요금이 급등하면서 발전소나 송전망 등에 투자하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PJM 용량 경매 이후 미국 증시에선 발전기업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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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가스발전소나 디젤 발전기 같은 전력 피크 대응 자산의 가치도 재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에 쏠렸던 관심이 송배전망, 에너지 저장 등 계통 인프라로 확대되고 있다. 노르웨이 스토어브랜드 자산운용은 “저탄소 경제 전환으로 혜택 볼 기업에 투자한다”며 전력망 업그레이드 기업을 기후 솔루션 포트폴리오에 편입했다.

전력망 문제가 부동산·산업 입지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전력 여건이 양호한 지역의 데이터센터 부지는 품귀 현상으로 임대료가 뛰었다. 반대로 전력 인프라가 빈약한 지역은 투자 유치에서 밀리는 양극화가 나타났다. 세계 데이터센터 임대료는 올 1분기 기준 전년 대비 3.3% 올랐다. 북버지니아(+17.6%)·시카고(+17.2%)·암스테르담(+18%) 등 전력 수요가 높은 지역에서 크게 상승했다.

인플레이션 자극

거시 경제에도 파급효과가 나타났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전력 요금과 가스 가격 급등했다. 유럽연합(EU) 소비자물가 상승의 40% 이상을 에너지 품목이 주도했다.

IEA는 “높은 에너지 가격이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가계를 빈곤으로 내몰았으며, 일부 공장은 가동을 줄이거나 멈추게 했고, 경제성장도 둔화시켜 여러 나라가 침체 위험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2022년 유럽 화학·비료 등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체들이 채산성 악화로 생산을 크게 감축했다.

중국에서는 전력난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며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쓰촨성은 기록적 가뭄과 폭염으로 수력발전 생산이 급감해 테슬라·폭스콘 등 수백 개 공장이 1주일 이상 전격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력망 투자 부진은 글로벌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 전력 인프라가 확충되지 못하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신규 투자가 지체된다. 이는 곧 GDP 감소로 이어진다. 남아공, 인도, 파키스탄 등 만성적 전력난을 겪는 국가들은 잦은 정전으로 연간 GDP의 수%대 손실을 보고 있다.

국가 기준 금리에서도 영향을 준다.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으로 각국 중앙은행가 금리를 인상하면 기업 투자 비용이 상한다. 전력망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 조달 비용도 커진다. 반대로 전력망 투자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금융지원·보조금 정책을 펴면 재정 지출 증가로 국가채무나 국채금리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

"10년 기다려야할 판"…AI산업 폭발에 글로벌 '전력망 비상' [글로벌 머니 X파일]

현재 미국·EU는 전력 인프라 예산을 증액하며 적자재정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채권 시장에도 파급된다. 미국의 누적된 인프라 투자 재정지출 등으로 미국 국채 발행이 늘어나자 올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한때 5%를 넘어서기도 했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은 전 세계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져 기업들의 설비투자와 가계의 부채 금융 비용을 늘리는 연쇄효과로 나타나기 쉽다.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는 전력망 제약이 특정 지역의 생산 차질로 이어져 다른 나라들의 부품 수급이나 물류에 영향 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 중국 쓰촨성의 정전 사태는 반도체 웨이퍼, 자동차 부품 등 다방면으로 파급됐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로 비료 생산이 줄자 이와 연관된 식량 가격 변동까지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 보고서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전 세계 인플레이션 변동에 영향을 줬고 이는 공급망을 통해 국가 간 전염효과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한 지역의 전력난은 에너지 가격 급등과 상품 생산 차질로 다른 지역 물가와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대응 방향은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 분야 핵심 공약인 '에너지 전환을 기반으로 한 산업 업그레이드' 실현을 위해 정부가 2030년까지 '제2의 경부고속도로'에 비유되는 '에너지고속도로' 개통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기후변화 대응과 산업 업그레이드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대전환'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를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될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를 2030년에 첫 개통을 목표로 삼았다,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핵심 클러스터인 호남권 생산 전기를 핵심 수요지인 수도권으로 나르는 초고압직류송전(HVDC)망을 말한다. 현재 국내도 송전망을 비롯한 전력계통 부족이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 확충에 핵심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공약으로 2030년 서해안에 우선 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이를 남해안, 동해안으로까지 넓혀 2040년에는 전 국토에 U자형 에너지 고속도로가 놓이게 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전력이 건설할 서해안 HVDC는 신해남∼태안∼서인천을 거치는 구간이 430㎞, 새만금∼태안∼영흥 구간이 190㎞에 이른다. 총비용은 7조9000억원, 수송 능력은 8GW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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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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