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완준]‘발송비만 370억’ 선거공보물…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가

1 day ago 7

선거 때면 어김없이 집 앞 우편함에 선거관리위원회가 발송하는 후보들의 선거공보물이 도착한다. 하지만 우편함에 눈길을 주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6·3 대선을 불과 하루 앞둔 2일까지 ‘어떤 아파트와 오피스텔엔 우편함 절반 이상에 공보물 봉투가 그대로 꽂혀 있다’거나, ‘어떤 아파트에선 뜯지도 않은 공보물 봉투들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줄줄이 발견됐다’는 보도들이 잇따른 배경이다.

▷막상 공보물을 열어봐도 빳빳한 종이에 화려하게 인쇄된 후보들의 공약엔 ‘어떻게’는 잘 보이지 않고 ‘뭘 하겠다’는 장밋빛 약속들만 나열돼 있을 때가 많다. 그 내용이 후보들의 TV토론회나 언론의 공약 분석, 유튜브 영상이나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들보다 더 친절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대선 땐 두 차례 공보물을 보낸다. 첫 공보물은 최대 16쪽까지 만들 수 있는 책자형이고 두 번째는 전단형이라고 부르는 1쪽짜리다. 전단형은 책자형을 요약한 수준이라 굳이 두 번 보내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러니 아예 공보물을 보지도 않고 버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선관위가 지난달 유권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공보물·벽보로 후보 정보를 얻는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TV 대담·토론회 및 방송 연설(36.7%),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20.2%), 언론 보도(17.1%), 인터넷(14.2%)에 비해 한참 낮았다. 사실상 공보물로 후보를 선택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이번에 지난 대선보다 50억 원 늘어난 약 370억 원을 공보물 발송 예산으로 편성했다. 선관위가 이번 대선 기간 두 차례 우편으로 부친 공보물은 책자형과 전단형 각 2400만 부를 합쳐 약 4800만 부에 달한다. 이뿐 아니다. 지난 대선 기준으로 보면 각 정당이 두 차례 공보물을 제작하는 데 후보당 많게는 50억 원 가까이 들었다. 대선 득표율이 15%를 넘기면 선거가 끝난 뒤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으니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공보물을 만들고 보내는 것이다. 소각 등 버려진 공보물 처리에 드는 지자체 예산까지 감안하면 읽지도 않는 인쇄물에 수백억 원 혈세를 헛되이 쓴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고령층 등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을 생각해 종이 공보물을 완전히 없애는 건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효용성도 불분명한 인쇄 공보물에 세금을 쏟아붓는 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회와 선관위에선 온라인 공보물 도입, 인쇄형 공보물 축소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은행이 고지서를 모바일이나 이메일로 받을지, 우편물로 수령할지 묻듯 유권자들이 선택하게 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성인의 98%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모바일 시대에 공보물만 아날로그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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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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