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공보물을 열어봐도 빳빳한 종이에 화려하게 인쇄된 후보들의 공약엔 ‘어떻게’는 잘 보이지 않고 ‘뭘 하겠다’는 장밋빛 약속들만 나열돼 있을 때가 많다. 그 내용이 후보들의 TV토론회나 언론의 공약 분석, 유튜브 영상이나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들보다 더 친절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대선 땐 두 차례 공보물을 보낸다. 첫 공보물은 최대 16쪽까지 만들 수 있는 책자형이고 두 번째는 전단형이라고 부르는 1쪽짜리다. 전단형은 책자형을 요약한 수준이라 굳이 두 번 보내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러니 아예 공보물을 보지도 않고 버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선관위가 지난달 유권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공보물·벽보로 후보 정보를 얻는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TV 대담·토론회 및 방송 연설(36.7%),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20.2%), 언론 보도(17.1%), 인터넷(14.2%)에 비해 한참 낮았다. 사실상 공보물로 후보를 선택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이번에 지난 대선보다 50억 원 늘어난 약 370억 원을 공보물 발송 예산으로 편성했다. 선관위가 이번 대선 기간 두 차례 우편으로 부친 공보물은 책자형과 전단형 각 2400만 부를 합쳐 약 4800만 부에 달한다. 이뿐 아니다. 지난 대선 기준으로 보면 각 정당이 두 차례 공보물을 제작하는 데 후보당 많게는 50억 원 가까이 들었다. 대선 득표율이 15%를 넘기면 선거가 끝난 뒤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으니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공보물을 만들고 보내는 것이다. 소각 등 버려진 공보물 처리에 드는 지자체 예산까지 감안하면 읽지도 않는 인쇄물에 수백억 원 혈세를 헛되이 쓴다고 볼 수도 있다.▷물론 고령층 등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을 생각해 종이 공보물을 완전히 없애는 건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효용성도 불분명한 인쇄 공보물에 세금을 쏟아붓는 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회와 선관위에선 온라인 공보물 도입, 인쇄형 공보물 축소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은행이 고지서를 모바일이나 이메일로 받을지, 우편물로 수령할지 묻듯 유권자들이 선택하게 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성인의 98%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모바일 시대에 공보물만 아날로그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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