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침실의 봉황도-백학도… 100여년 전 조선 궁중벽화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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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개관 20주년 특별전
김규진 걸작 ‘총석정절경’ 선보여
‘경훈각’ 벽화 2점, 첫 일반 공개

순종 황제가 집무실 겸 접견실로 사용했던 창덕궁 희정당. 대청마루의 동쪽 벽은 ‘총석정절경도’(왼쪽)로, 서쪽 벽은 ‘금강산만물초승경도’로 장식돼 있다. 사진 속 그림은 모사도이고, 원본을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에서 볼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순종 황제가 집무실 겸 접견실로 사용했던 창덕궁 희정당. 대청마루의 동쪽 벽은 ‘총석정절경도’(왼쪽)로, 서쪽 벽은 ‘금강산만물초승경도’로 장식돼 있다. 사진 속 그림은 모사도이고, 원본을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에서 볼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1874∼1926)이 정무를 보던 창덕궁 희정당. 그 동서쪽 벽은 원래 장대하게 펼쳐진 금강산 그림으로 장식됐다. 깎아지른 돌기둥이 무수히 모인 아래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이 그림의 화폭 모서리엔 ‘김규진 근사(謹寫·삼가 그려 올린다)’라는 한문이 ‘총석정절경(叢石亭絶景)’이라는 제목과 나란히 적혔다. 서화가 김규진이 1920년 완성한 이 그림은 조선 말 궁중 회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그림을 포함해 창덕궁 내전을 장식했던 국가등록문화유산 벽화 6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 ‘창덕궁의 근사(謹寫)한 벽화’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4일 개막했다. 현재 창덕궁에 붙어 있는 건 모사도와 영인본들이고, 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이들 원본을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건 이 박물관의 개관 20주년 특별전인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작품들엔 근대화의 영향이 고스란히 담겼다. 원래 조선의 궁중 화가는 그림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이홍주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근대적 미술교육을 받은 젊은 화가들은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자아를 드러냈다”며 “궁중 회화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전에 없던 대형 화면으로 구성한 것도 특별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벽화들은 각각 너비가 525cm에서 882cm에 이르는 대작이다. 높이 역시 2m 안팎으로 장엄한 멋이 느껴진다. 1917년 화재로 창덕궁이 모두 불탄 뒤 1920년 건물을 재건하면서 제작됐다. 비단에 그린 뒤 종이로 배접하고 이를 벽에 부착한 ‘부벽화(付壁畵)’다.

순종과 황비 순정효황후(1894∼1966)가 서재 겸 휴식 공간으로 썼던 경훈각의 벽화 2점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른 아침의 청록빛이 아름다운 ‘조일선관도(朝日仙觀圖)’와 저녁 무렵의 붉은빛을 담은 ‘삼선관파도(三仙觀波圖)’로, 모두 속세 밖의 선경(仙境)을 묘사했다.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와 거북을 든 동자 등이 등장한다.

전시는 벽화마다의 상징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황제 부부의 침전인 대조전을 장식했던 ‘봉황도’와 ‘백학도’도 전시됐다. ‘봉황도’에 그려진 봉황 10마리는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백학도를 두고 “학은 십장생 중 하나로 궁중 회화의 단골 소재”라고 했다. 백학도는 밑그림도 볼 수 있다. 벽화 6점이 완성됐던 1920년 동아일보는 “한번 그려 붙이면 수백 년, 수천 년의 길고 긴 세월을 두고 조선 미술의 정화(精華)라 우러러볼” 작품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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