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청각-촉각… 캔버스에 ‘찰나’를 담다

2 hours ago 1

배윤환 작가 스페이스K서 개인전
한때 화폭에 수많은 이야기 쏟아내…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속박”
한순간 강렬한 ‘느낌’ 화폭에 담아… “목구멍에 걸린 이야기 꺼냈어요”

내려친 광부의 얼굴에서 금(金)이 나오는 모습을 담은 배윤환 작가의 신작 ‘두 번 내려쳐’. 스페이스K 제공

내려친 광부의 얼굴에서 금(金)이 나오는 모습을 담은 배윤환 작가의 신작 ‘두 번 내려쳐’. 스페이스K 제공
11년 전 배윤환 작가(42)는 서울 종로구 인사미술공간에서 연 개인전에서 폭 50m의 캔버스를 꽉 채운 그림의 ‘일부’를 공개한 적이 있다. 전시장이 50m 그림을 펼치기에 턱없이 작았던 탓이다. 전시장에서 관객은 절반인 25m만 볼 수 있고 나머지 절반은 말려 있는 상태였다. 이 무렵부터 배윤환은 거대한 스케일에 수많은 이야기가 ‘와글거리는’ 그림으로 기억되곤 했다.

그런 그가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14일 개막한 개인전 ‘딥 다이버(Deep Diver)’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공개했다. 12일 미술관에서 만난 배 작가는 “4, 5년 전부터 ‘와글거림’을 지워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엄두를 못 내다 이제서야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림을 한창 그릴 땐 단서를 숨겨 놓는 재미도 있었고, 새벽까지 몰두해서 그리면 그림 속 세상에 내가 살고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걸 못 벗어나면 내 그림자에 영원히 끌려다닐 것 같았습니다.”

배 작가는 14일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막한 개인전 ‘딥 다이버(Deep Diver)’에서 서사를 없애고 감각에 집중한 ‘서커스’(왼쪽), ‘선크림’ 연작 등을 공개했다. 스페이스K 제공

배 작가는 14일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막한 개인전 ‘딥 다이버(Deep Diver)’에서 서사를 없애고 감각에 집중한 ‘서커스’(왼쪽), ‘선크림’ 연작 등을 공개했다. 스페이스K 제공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결과는 회화 ‘서커스’, ‘선크림’, ‘사이렌’, ‘두 번 내려쳐’ 연작으로 나왔다. ‘서커스’ 연작에선 인물이 달리거나 점프하는 듯한 모습을 통해 ‘역동성’을, ‘선크림’에선 얼굴에 크림을 바르는 행위를 담아 ‘촉감’을 내세웠다. ‘사이렌’은 시끄러운 확성기에서 들리는 ‘청각’이 중심이다. 줄줄이 이어지는 이야기 대신 한순간의 강렬한 느낌을 포착했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는 좌우로 격하게 흔들리는 배를 묘사한 작품 ‘요람’과 함께 대형 벽화가 있다. 선과 도형, 문자로 벽을 채운 것도 이전의 그림과 다른 점이다.

이번 전시 작품 대부분은 흑백 톤으로 색을 제한했다. 어두운 그림은 평범한 관객이나 컬렉터가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면에서 과감한 선택이다.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큐레이터는 “배 작가가 초기 검은 색조의 힘 있는 그림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색채를 쓰면서 미술시장에서도 반응을 얻었다”며 “미술관에서는 전업 작가로 생존한 작가의 예술적 역량을 다시금 보여주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제목 ‘딥 다이버’는 마음속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 꺼내지 못한 것들을 풀어 놓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배 작가는 “목구멍에 걸려 있던 이야기를 가만히 맴돌며 관찰한다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붙인 제목”이라고 했다.

배 작가가 과거 스타일로 그린 작품도 볼 수 있다. 폭이 10m인 작품 ‘우린 잘 지내고 있어’는 동굴 속 광부들이 무언가를 긁고 파내고 부수는 과정을 복잡한 구성으로 담았다. 광부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손에 트럼프 카드를 쥐고 있는데, ‘각자의 패를 쥐고 분투하는 사람들’이라고 작가는 표현했다. 그 옆 ‘두 번 내려쳐’ 연작은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광부들의 얼굴에서 금(金)이 나오는 모습을 묘사했다. 과거의 자신을 부숴야만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배 작가는 “유료 전시에서 작품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며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전시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11월 9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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