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안전 국제기준 못미쳐
활주로 여유 300m 권고에도
국내공항 대부분 240m 그쳐
이탈방지장치 도입 서둘러야
참사 희생자 전원 신원확인
보잉 관계자 2명 추가로 입국
국내 공항 활주로 안전 여건이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권고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ICAO는 전 세계 항공사고 20%가 ‘활주로 이탈’로 발생하는 참사를 막기 위해 활주로 안전행동 계획을 마련해두고 있다. 국내 공항 활주로 대부분은 활주로 끝 안전구역이 ICAO 권고 기준에 못 미치는 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활주로이탈방지시스템(EMAS)은 도입 공항이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1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ICAO는 지난해 2월 ‘글로벌 활주로 안전행동 계획’을 통해 전 세계 공항이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행동으로 활주로 끝 안전구역을 ICAO에서 요구하는 대로 만들 것을 권고했다. 또 오버런을 방지하기 위한 착륙 제동장치를 설치하라고 강조했다.
ICAO는 활주로 끝에 위치한 착륙대에서 240m 길이의 종단안전구역을 권장한다. 착륙대 길이가 통상 60m인 점을 고려하면 300m 길이의 안전구역이 필요한 셈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도 1000피트(305m)의 안전구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국제공항은 안전구역 길이가 대부분 활주로 끝에서 240m에 불과하다. 제주항공 사고로 17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은 199m에 그쳤다. 국내선만 다니는 지방공항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가장 짧은 안전구역 기준으로 사천공항 122m, 원주공항 90m, 울산공항 90m 등이다. 앞으로 지어질 울릉공항, 흑산공항, 백령공항은 45m로 예정돼 있다.
ICAO는 종단안전구역 길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을 때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착륙 제동장치로 EMAS를 꼽았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공항 가운데 140여 곳이 EMAS를 설치했다.
모범 사례로 꼽히는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은 대부분의 활주로가 300m 거리의 안전구역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제1활주로의 한쪽 끝이 바다와 가까워 위험하다는 이유로 2019년 EMAS를 설치해 안전성을 높였다. 하지만 국내 공항 중 EMAS가 설치 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국내 공항의 안전수준이 국제 기준에 못 미치는 가운데 국내 공항 관리·운영 기관인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4월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사장이 사직한 후 8개월째 공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미흡’ 이하 평가를 받았지만 사장 공석이 장기화되면서 공항공사는 방향타를 잃은 상태다.
지난해 6월 발표된 ‘2023년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서도 공항공사는 안전 부문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안전 및 재난 관리’ 부문에서 E를 받았고 ‘공항 안전·보안 사업 성과 관리의 적정성’ 부문에서는 D를 받았다. 이에 이번 참사를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제주항공 사고 나흘째인 1일 사망자 179명 전원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47명은 지문으로, 32명은 DNA로 신원을 확정했다. 유가족들은 사고 현장을 처음으로 방문해 추모 의식을 치렀고, 시신을 인도받은 일부 유족은 장례 절차에 돌입하거나 남은 희생자의 시신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사고 조사와 관련해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 관계자 2명이 전날 밤 추가로 입국했다. 다만 파손된 비행기록장치(FDR)가 국내에서 자료 추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면서 참사 원인 파악에 시일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 협조를 통해 미국으로 이동해 분석하는 방안을 합의했다”며 “분실된 커넥터를 대체할 수 있는지와 다른 걸 찾더라도 이를 완벽하게 붙일 수 있는지에 대해 사고조사위원회에서 기술적 검토를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용어설명
▷ 활주로이탈방지시스템(EMAS) :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할 경우를 대비해 항공기 제동을 돕는 장치다. 활주로 바깥 바닥에 콘크리트 블록 등을 깔아 지면과의 마찰력을 높여 항공기 오버런을 최소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