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향한 브랜드의 열정…'아트 파리'를 다시 재단하다

3 hours ago 2

지난달 장 누벨이 설계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 광장 2번지에 문을 열었다. /ⓒJean Nouvel, ADAGP, 사진_Martin Argyroglo

지난달 장 누벨이 설계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 광장 2번지에 문을 열었다. /ⓒJean Nouvel, ADAGP, 사진_Martin Argyroglo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열며 약 500만 명을 수용하기 위해 대형 호텔이 하나 지어졌다. 루브르 박물관 옆 팔레 루아얄 광장에 ‘그랑 오텔 뒤 루브르’라는 이름으로 수 많은 명사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1887년 호텔이 문을 닫은 후엔 80년 넘게 파리의 쇼핑 중심지가 됐다. ‘그랑 마가장 뒤 루브르’라는 이름으로 앤티크 백화점으로 운영됐다.

파리 행정의 중심이자 근대 도시계획의 상징인 이곳에 지난 달 25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이전 개관했다. 40년 넘게 현대미술을 사랑해온 까르띠에는 도시의 위대한 유산 위에 새로운 예술의 언어를 실험하기 위해 이 장소를 선택했다. 내부 공간은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건축가 장 누벨의 손을 거쳐 탈바꿈했다. 1984년 당시 메종 까르띠에 회장인 알랭 도미니크 페랭이 설립한 이 문화재단은 럭셔리 브랜드 중 가장 먼저 현대미술에 본격 투자했다. 40년간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전시로 독보적 위상을 다져왔다.

새 공간의 핵심은 천장 높이가 바뀌는 5개의 가변형 강철 플랫폼이다. 전시마다 공간 구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내부가 무한히 변한다면, 외부는 도시와 연결된다. 장 누벨은 1층 전면을 파리 거리를 향한 대형 창으로 열어 미술관 안팎의 경계를 지웠다. 반면 나폴레옹 1세 시대의 리볼리가 아케이드와 외관은 그대로 보존했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혁신을 추구했다.

누벨은 이곳을 ‘파리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구상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자전거, 차량의 움직임이 살아있는 배경처럼 펼쳐진다. 행인들은 유리창 너머로 전시 작품을 힐끗 들여다보고, 안에서는 파리의 일상이 작품과 겹친다. 미술관과 파리라는 도시 사이의 ‘즉각적인 대화’가 만들어진다.

재개관 전시 ‘Exposition Générale(종합 전시)’은 19세기 백화점 시절의 전시명을 빌려왔다. 당시 가구, 패션, 가전 등 신제품을 모아 자유롭게 전시하며 파리 시민의 사교 공간 역할을 한 행사다. 재단은 당시의 개방적 분위기를 재현하듯 컬렉션에서 100여 작가를 선별해 자연·과학·공예·현대미술을 함께 선보였다. 내년 8월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고정된 관람 경로 없이 관객이 길을 찾으며 작품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이전으로 파리는 이제 럭셔리 기업이 중심을 차지한 현대미술의 세 축이 완성됐다. 루이비통재단미술관, 케링그룹 회장 프랑수아 피노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와 함께다. 프랑스 기업들은 지금 문화예술의 거대한 후원자이자 주최로서 활약하고 있다. 유통기업 르클레르가 브르타뉴에 수도원을 개조해 지은 복합 문화공간, 럭셔리 브랜드 연합체 ‘코미테 콜베르’가 정부와 협업해 장인들의 유산을 지키고자 한 장면들을 이어서 소개한다.

장 누벨이 설계한 까르띠에 미술관…"예술가의 아이디어 담을 그릇"
40년 만에 팔레루아얄 이전…내년 8월까지 무료로 전시

현대미술 향한 브랜드의 열정…'아트 파리'를 다시 재단하다

까르띠에재단 미술관(사진)의 팔레루아얄 이전은 재단 40년 역사의 전환점이다. 1984년 파리 남서부 교외 주이-앙-조자스에서 시작해 1994년 파리14구 몽파르나스 근처 라스파이로, 이번엔 루브르 맞은편 파리1구로 이동하며 문화 심장부에 자리 잡았다. 루브르박물관장은 올해 초 문화부 서한에서 까르띠에재단과 부르스 드 코메르스 개관이 “이 지역의 외관과 매력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했다. 루브르, 코메디프랑세즈, 국립도서관 등 주요 문화기관이 밀집한 파리1구에 민간 재단들이 합류하며 공공과 민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문화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장 누벨의 가변형 건축과 40년간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까르띠에재단은 파리 현대미술 지형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까르띠에재단 컬렉션 디렉터이자 이번 전시 큐레이터인 그라치아 콰로니는 아르떼와의 인터뷰에서 “10년 후 예술가들이 이 공간으로 무엇을 할지 우리도 모른다. 건축이 예술의 새로운 잠재력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루아얄은) 장 누벨이 예술가들의 예측 불가능한 아이디어를 모두 수용하기 위해 설계했어요. 플랫폼 조합의 경우의 수는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워 공간 자체가 예술 창작의 일부가 됩니다. 플랫폼마다 높이가 달라지면서 매번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는 셈이죠.”

콰로니 큐레이터가 밝힌 까르띠에재단의 정체성은 독립성이다. 1984년 알랭 도미니크 페랭이 재단을 설립하면서 상업 활동과 재단을 명확히 분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후 설립자의 개인 취향이나 재정적 이익보다 세계 신진 작가 발굴에 집중해 왔다.

재개관을 기념해 내년 8월까지 무료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 대해 그는 “지난 40년간의 전시에서 주요 흐름을 파악해 방향을 정했고, 관람객이 방대한 컬렉션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재단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파리=김인애 아르떼 객원기자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