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글, 민간 스테이블코인 한계 지적
예금토큰·기관CBDC 구조 첫 검증
BIS 아고라 연계로 국경 간 결제 추진
신현송 총재 취임에 ‘한강 2단계’ 탄력
한국은행이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예금 토큰을 결합한 ‘프로젝트 한강’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민간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가진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일 쟁글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재직 시절부터 기관용 CBDC와 예금 토큰을 결합한 디지털 통화 인프라를 연구해 온 신현송 총재가 4월 21일 취임하면서 ‘프로젝트 한강’이 기존 2계층 통화 시스템의 신뢰 구조를 토큰화된 결제 인프라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결제 건수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41.3%에서 2024년 15.9%로 11년 만에 절반 이상 줄었다. 모바일 결제는 카드 결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 같은 간편결제 서비스도 이미 전국 차원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쟁글 리서치는 “국내 결제 생태계는 표면적으로 디지털화됐지만 결제를 완결시키는 금융 인프라의 디지털화는 아직이다”고 지적했다.
현재 소액결제시스템은 개별 거래마다 은행 간 준비금을 즉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누적된 지급지시를 바탕으로 순채권·순채무를 계산한 뒤 차액만 한은금융망에서 최종 결제하는 배치 정산 구조를 따른다.
이 사이에 특정 참가은행이 결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이미 완료된 것으로 처리된 거래와 실제 자금 정산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제 결제에서는 이 같은 구조적 한계가 더욱 뚜렷해진다. 한국 기업이 미국 거래처에 달러를 송금할 경우 환거래 은행, 현지 결제 시스템, 각국의 운영시간과 규제 절차를 순차적으로 거쳐야 하고 각 단계마다 지연·오류·비용·상태 불확실성이 쌓인다.
BIS와 금융안정위원회(FSB)가 국경 간 결제의 핵심 문제로 높은 비용과 느린 속도, 낮은 투명성을 반복적으로 지적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구조에 있다.
금융 소비자들이 보기에 즉시 처리되는 것처럼 보이는 결제·정산 과정의 이면에는 여러 금융기관의 장부와 결제 시스템이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넘지 못한 세 가지 기준
당초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거래를 넘어 2020년대 들어 송금과 결제 영역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장했다.
달러 접근성이 낮은 신흥국에서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인 USDT(테더), USDC(서클) 등이 실물 달러의 디지털 대체재처럼 활용되고 있다. 탈중앙화 거래소(DEX)·지갑·탈중앙화금융(디파이·DeFi)·결제 서비스도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연결됐다.
그러나 BIS는 2025년 연차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시스템의 중심이 되기에는 세 가지 요건, 즉 단일성·탄력성·무결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먼저 단일성 측면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취약하다. 국민은행 예금과 신한은행 예금이 동일한 원화 가치로 통용되는 이유는 은행 간 최종 정산이 한국은행의 지급준비금, 즉 중앙은행 화폐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최종 정산 역할을 수행할 공통 결제 앵커가 없다. 지난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서클이 USDC 준비금 33억달러를 해당 은행에 예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USDC가 한때 약 0.87달러까지 하락하는 디페깅이 발생하기도 했다.
쟁글리서치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마저도 발행사와 준비자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가격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탄력성 문제다. 디파이 기반 신용은 담보 자산의 시장가격과 자동 청산 규칙에 강하게 묶여 있다.
담보 가치가 오르면 차입 한도가 늘고 레버리지가 확대되지만 가격이 하락하면 청산 물량이 다시 가격 하락을 압박하는 경기순응적 구조를 만든다.
전통 은행 시스템에는 위기 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최후의 공급자로서 중앙은행이 존재하지만 디파이에는 이 역할을 수행하는 공적 주체가 없다.
끝으로 무결성 측면에서도 딜레마가 있다. 비수탁 지갑을 통한 익명 접근은 불법 자금 차단을 어렵게 하고 USDC·USDT 같은 중앙화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가 특정 주소를 동결할 기술적 권한을 갖지만 그 행사 기준과 책임 구조는 여전히 민간 기업에 손에 달려 있다.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무결성 문제는 올해 4월 드리프트(Drift) 프로토콜 해킹 사태에서 드러났다.
당시 공격자는 탈취 자산 중 약 2.32억 달러 규모의 USDC를 서클의 CCTP를 통해 솔라나에서 이더리움으로 이동시켰고, 온체인 데이터 분석가인 ZachXBT는 이 과정이 미국 업무 시간 중 약 6시간에 걸쳐 100건 이상의 트랜잭션으로 진행됐음에도 서클이 동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쟁글리서치는 “민간 발행사가 기술적으로는 강력한 통제 권한을 갖고 있지만 그 권한 행사의 일관성과 책임 구조는 여전히 논쟁적”이라고 평가했다.
예금 토큰과 기관용 CBDC의 역할 분리한 ‘프로젝트 한강’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프로젝트 한강은 BIS가 제시한 통합원장 개념을 실제 구현하는 실험이다. 통합원장이란 토큰화된 화폐와 토큰화된 자산이 하나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공통 플랫폼 위에서 발행·이전·결제되는 차세대 금융시장 인프라를 뜻한다.
프로젝트 한강은 기존 2계층 통화 시스템을 폐기하지 않고 중앙은행 화폐와 상업은행 예금을 각각 기관용 CBDC와 예금 토큰으로 구현해 토큰화된 결제 환경으로 확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관용 CBDC는 일반 이용자가 직접 보유하는 범용 화폐가 아니라 은행 등 금융기관이 은행 간 결제에 사용하는 디지털화폐다.
현행 지급준비금이 은행 간 최종 결제자산으로 기능하듯 기관용 CBDC는 디지털화폐 시스템 안에서 은행 간 자금 이전과 최종 결제를 담당한다.
예금 토큰은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토큰화된 예금으로 이용자는 자신의 은행 예금을 전환해 전자지갑을 통해 가맹점에서 결제에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A은행 고객이 B은행 가맹점에서 3만원을 결제하는 경우 ▲A은행 스마트 계약이 이용자 지갑의 예금 토큰 3만원을 소각하고 ▲동시에 한국은행 디지털화폐 시스템에서 A은행의 기관용 CBDC가 B은행으로 이전되면 ▲B은행 스마트 계약이 가맹점 지갑에 예금 토큰 3만원을 새로 발행하는 세 단계가 하나의 조건부 처리 흐름으로 묶인다.
A은행 예금 토큰 소각, 은행 간 정산, B은행 예금 토큰 재발행이 함께 성공해야 거래가 완결되는 구조다.
외부 연결의 열쇠…이머니 토큰과 특수지급 토큰
쟁글리서치는 프로젝트 한강의 예금 토큰 외에도 이머니 토큰과 특수지급 토큰이라는 구조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머니 토큰은 기관용 CBDC를 준비자산으로 발행되는 민간 디지털통화다. 예금 토큰이 은행 예금 자체를 토큰화한 것이라면 이머니 토큰은 그 위에서 별도의 민간 결제토큰을 발행하는 구조다.
특수지급 토큰은 이머니 토큰을 탄소배출권, 디지털 상품권, 실물자산연계(RWA) 같은 외부 원장 결제에 연결하기 위한 장치다.
기관용 CBDC를 외부 원장에 직접 유통시키는 대신 중간에 이머니 토큰 계층을 두어, 중앙은행 화폐를 직접 올리지 않으면서도 민간 디지털통화를 통해 외부 자산 거래의 결제 레그를 확보하는 설계다.
개념검증(PoC) 실험에서는 외부 분산원장과의 연계를 위해 자산 간 안전 이전 프로토콜(SATP)이 활용됐다.
프로젝트 한강은 결제 성립에 필요한 핵심 상태 변화와 스마트 계약 실행은 온체인에서 처리하되 개인정보·본인확인·계정 관리·기존 결제기기 연계는 기존 금융 시스템과 외부 시스템에 남겨두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채택했다.
분산원장에는 지갑 주소·금액·거래 시간 등 최소 데이터만 기록되고, 자금세탁방지 관련 정보와 개인식별정보는 오프체인 메시지 채널을 통해 교환된다.
프로젝트 한강 역시 장기적으로는 RWA 플랫폼과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이어지는 온·오프램프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쟁글리서치는 “허가형 분산원장 안에서만 작동하는 예금 토큰이 글로벌 퍼블릭 체인 및 RWA 시장과 충분히 연결되지 못한다면 한국의 디지털 통화 실험은 국내 결제 효율화에 그칠 수 있다”며 “한국은행이 BIS 프로젝트 아고라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갈라파고스화 리스크를 완화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프로젝트 아고라는 여러 국가의 중앙은행과 민간 금융기관이 토큰화된 상업은행 예금과 기관용 CBDC의 국가 간 연동 가능성을 실험하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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