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중의 고뇌-비애가 내 혼을 붙잡아”

2 hours ago 2

日보도사진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 62년간 100여 차례 오가며 10만컷 기지촌 -파병-민주화 운동 등 담아 숨비 제공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 일본 보도사진계의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90·사진) 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것. “좋다”고 하자, 그는 카메라를 꺼내어 들고 구부정한 몸을 일으켜 성큼 소파 위로 올라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몸짓에서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구와바라 씨는 1964년부터 100여 차례 한국을 오가며 청계천과 동두천 기지촌, 베트남 파병,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10만 컷에 달하는 한국의 모습을 찍었다. 자신의 삶과 작업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사진의 얼굴’ 개봉(2일)을 맞아 방한한 그는 “한국 민중에게 강요된 고뇌와 비애가 보도사진가의 혼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1962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미나마타병’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으로 데뷔한 그는 잡지사 특파원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60여 년 동안 한국을 촬영하며 그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개XX” “쪽XX” 등 욕설이었다. “왜 못사는 모습을, 그것도 하필 일본인이 찍느냐”는 비난을 받았던 것. 그럼에도 무엇이 그를 계속 한국으로 이끌었는지를 묻자 그는 1965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부터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회고했다. 그리고 “한국의 사진에는 한국인의 피, 땀, 눈물이 서려 있다”고 말했다. 구와바라 씨는 여전히 자신이 찍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묘를 찾는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은 ‘결단식 후 어머니와 면회 중인 파월 병사, 여의도 비행장’(1965년)이다. 어머니가 아들의 귓가에 무어라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사진이다. 그는 “그 병사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그가 살아 돌아왔는지 오래도록 확인했지만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