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글로벌 관세전쟁에 한국이 본격적으로 휘말리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내달 12일부터 한국을 포함해 각국에서 수입하는 철강 및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에 대한 관세 조치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조치에 대해 “예외나 면제 없이 25%이며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고 밝혔다. 이 명령은 한국을 포함한 9개 국가와 지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모든 예외조치를 종료한다고 선언했다. 기존에 관세 면제를 승인받은 제품에 대해서도 3월12일 이전에 수입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에는 관세 대상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호주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해 줄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협상을 통해 일부가 완화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집권 1기 당시인 2018년에 도입된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는 주로 철강재와 1차 알루미늄을 겨냥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공 전 철강재 등 외에도 파생상품 일체를 관세 부과 대상으로 명시했다. 상무부 장관이 파생 철강제품 수입상황을 점검한 후 필요시 품목을 추가하라는 내용과 관세를 회피하려는 경우 최대한의 제재를 부과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 철강·알루미늄사들은 물론 이를 이용해 현지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온 국내 기업들은 당장 생산비 상승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명 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관세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조치는 우리나라에 많은 일자리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자동차 산업은 매우 중요한 부문이 될 것이며,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자동차와 반도체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비중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최대 품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수출품 중 가장 효자는 자동차였다. 완성차 수출규모는 전년 대비 7.9% 늘어난 347억달러어치에 달했고, 부분품이나 부속품 수출도 1.2% 늘어난 71억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전체 자동차 수출액(683억달러) 중 미국 비중이 절반 이상(50.8%)에 달해 '대미수출 쏠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작년 1~11월 기준 미국의 자동차 수입액 중 한국의 비중은 17.6%로 전년(14.8%) 대비 2.8%포인트 상승했다.
반도체 부문은 자동차에 이어 두 번째로 효자품목이었다. 반도체를 포함한 컴퓨터 부속품과 부분품 대미수출은 지난해 82억달러로 전년 대비 116.8% 증가했다. 무역협회는 미국 내에서 인공지능(AI) 투자가 늘어나면서 D램 모듈 수요가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 반도체, 철강이 잇달아 트럼프 정부의 관세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산업 현장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애초 예고됐던 부분이라고는 해도 실제 정책이 실행되는 속도도 빠르고, 강도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상황이어서다. 이러한 관세정책의 결과로 전 세계 교역량이 감소하고 경제성장이 둔화될 경우 한국 경제 전반에 장기간 깊은 충격을 남길 수 있다.
보편관세 구상을 대체하겠다며 내놓은 상호관세도 금주 중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날짜는 11~12일(한국시간 12~13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25%(관세율)이라면 우리도 25%, 10%면 우리도 10%”라면서 “이제는 상호적으로 되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