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정치인과 경제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던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당시에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걱정을 한 몸에 안고 등장했지만,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 존재도 일상이 돼 버렸다. 처음엔 마치 미국 감성 가득한 영화 ‘람보’ 속 기관총처럼 요란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도 이제는 조금은 익숙한 배경음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재정정책 방향을 관장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석상에서는 근심이 크다. 미국발 관세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 여파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겨냥한 품목이 문제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의약품…. 하나같이 대한민국의 ‘내일’을 책임질 산업들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하다. 산업 현장에서 만나는 기업인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결정이 나 불확실성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주요 품목의 대미 수출액은 약 523억달러로 전체 대미 수출의 40%를 넘는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에서 생산된 세계 수출용 차량 218만 대 가운데 미국 수출 비중이 101만 대, 전체의 47%에 달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 영국이 미국과 가장 먼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더기로 지목한 57개국 가운데 협상의 물꼬를 가장 먼저 튼 영국은 일본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택했다. 지연전술 대신 빠르게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영국산 자동차에 부과될 예정이던 27.5%의 관세를 10% 수준으로 낮추는 성과까지 끌어냈다.
반면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세 협상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 배경엔 정치적 공백이 있었다. 경제부총리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재무장관, 무역대표부 대표와 마주 앉았을 때도 대통령 궐위 상태를 이유로 야당은 정부의 협상 자제를 촉구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또 한 번의 대통령 탄핵, 그리고 그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실물경제에 미친 영향력을 되짚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반도체, 조선, 방산 등에서 우리 기업들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산업과 통상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누구보다 악기를 잘 다루는 이에게 연주를 맡기듯, 실무자들의 손에 협상의 악보를 쥐여줘야 한다.
나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환위리(以患爲利)’라는 말을 좋아한다. 근심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이 위기도 우리가 잘 넘겨낸다면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는 이제 미국과의 관세 협정을 포함해 오래 미뤄온 경제 과제들을 풀어야 한다. 나아가 수출입 구조의 다변화라는 더 큰 숙제까지 한 발짝씩 내디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