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르신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단연 파크골프다. 초록 잔디 위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승부는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노년의 일상에 생기를 더한다. 즐기려는 발길은 날로 늘어났지만 인프라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파크골프장마다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대란이 벌어지기 일쑤다.
간극을 메우기 위한 고민은 ‘새로운 공간’이라는 해법으로 향했다. 뛰어난 접근성, 쉽고 빠른 이동성을 고려하면 어르신들에게 지하철역만큼 최적의 공간은 없을 것 같았다. 65세 이상에게는 경로 무임승차라는 특별한 티켓이 존재한다는 점도 힘을 실었다. 해를 거듭한 협의와 노력 끝에 도심 공원에서 즐기던 파크골프를 지하철역에서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 삼각지역과 석계역에 지하철 최초의 스크린 파크골프장이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콘크리트 정글에서 활력을 되찾을 작은 공간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지하철역의 즐거운 변화다. 그 변화를 이끈 것은 공간 재해석이다. 유휴공간을 알차게 쓰기 위해 조성된 지하철 상가는 별도 광고 없이도 고정 수요를 확보할 수 있어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입지로 평가받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프랜차이즈 기업이 앞다퉈 입점하며 임대료가 크게 올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온라인 소비가 급격히 확산하자 화장품 의류 액세서리 등 주력 업종의 상가 가치는 빛을 잃어갔다. 시민들의 외면 속에 공실률은 한때 20%까지 치솟았다.
2023년 말, 공실 상가를 ‘파는 공간’에서 ‘나누는 공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새로운 가능성의 물꼬가 트였다. “오늘 새벽에 갓 따온 포도 보고 가세요.” 지역의 우수한 농수산물과 특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이는 직거래 장터 ‘서울PICK’은 지난해 잠실역 등 7개 역 상가에 문을 열며 어려움을 겪던 지역 농가에 희망의 씨앗을 안겼다.
하계역에는 청년들의 꿈을 응원하는 팝업스토어가 들어섰고 종각역과 사당역의 불 꺼진 상가는 택배, 배달, 대리운전 등 이동노동자를 위한 오아시스로 재탄생했다. 지역사회와 손잡고 시민의 곁으로 돌아간 21개 역, 23개 상가는 함께 성장하는 공존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서울 지하철 1500여 개 상가의 공실률은 5%로 크게 낮아졌고, 지역사회는 부담 없는 임차료로 시민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비워진 그릇이 다양한 가능성을 품듯, 공간 역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무엇을 담아낼지는 그곳에 어떤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동을 위한 통로에서 도심 속 여가·복지 플랫폼으로의 진화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