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KTX가 서울·부산 오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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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KTX가 서울·부산 오가듯이

길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를 이끈 장소다. 경부고속도로가 산업화의 길을 열었듯, KTX는 공간을 단축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길은 양면성을 지닌다.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수도권으로 더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됐고, 지역의 소비와 인재를 흡수하는 ‘빨대 효과’를 낳았다. 길은 빨라졌지만 정작 지역은 비어갔다.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길은 정말 지역을 살릴 수 있는지.

창업 생태계도 다르지 않다. 벤처 투자는 지역 기업을 키워야 하지만, 자본과 투자자는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다. 유망한 스타트업이 지역에서 탄생해도 투자를 받으려면 결국 수도권으로 향한다. 길과 자본이 지역을 흡수하는 구조, 이것이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다.

그렇다고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길이 열렸다면 그 길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부산역에는 이미 창업과 경제 활동을 위한 공간(유라시아플랫폼)이 있다. 이곳이 단순한 교통 거점이 아니라 창업가와 투자자, 스타트업을 포함한 기업들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면, KTX는 단순히 거리를 줄이는 개념을 넘어 비즈니스 기회를 연결하는 인프라가 될 수 있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지역 창업 생태계를 키우려면 자본의 흐름을 지역으로 돌려야 한다. 지역 특화형 펀드를 조성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운용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수도권에서만 열리던 투자설명회(IR)를 부산·대구·광주 같은 지역에서도 수시로 연다면 창업가는 굳이 서울에 가지 않더라도 투자사를 만날 수 있다. 투자사가 지역에 뿌리를 내릴 때 자본의 무게중심도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자본은 머무는 곳을 키운다. 투자의 흐름을 바꿔 놓는 일이 지역 균형의 출발점이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보여준 통찰을 빌리면, 길은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무대다. KTX가 단순한 철도가 아니라 창업가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고속 네트워크로 기능할 때 새로운 길은 열린다.

하늘길도 마찬가지다. 김해공항이 어느 정도 지역 수요를 감당하고 있지만, 주요 비즈니스 항로는 여전히 인천을 거쳐야 한다. 글로벌 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이 세계와 곧장 연결되려면 더 직접적이고 편리한 길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가덕도 신공항은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부산이 진정한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큰 의미가 있다.

글로벌 창업 도시로 가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22~23일 부산에서 열리는 FLY ASIA(아시아 창업엑스포)는 그 한 장면을 보여준다.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이 부산에서 만나고, 그 자리에서 곧장 해외 시장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부산이 글로벌 네트워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길의 의미는 속도가 아니라 지역과 세계를 곧바로 잇는 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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