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학기술원(GIST) 캠퍼스의 분위기는 여느 과학기술원과는 다르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교수는 “창업 아이템을 연구실에서 고도화해도 된다”며 등을 떠민다. 지도교수가 상용화 과제를 먼저 권유하고, 학생이 군 복무 중 보낸 ‘창업 구상 메일’에 친히 답장을 보내주기도 한다. KAIST·포스텍보다 규모는 작지만 오히려 이를 강점 삼아 학생 창업 기업을 밀착 지원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왔다.
지난 7월 코스닥시장 상장에 성공한 뉴로핏은 GIST가 배출한 또 하나의 연구실 창업 기업이다. 뇌 영상분석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2016년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석사 과정이던 빈준길 대표(사진)가 같은 과 박사 과정 동료 김동현 대표와 함께 창업했다. 빈 대표는 “연구실에서 뇌의 세부 영상을 분석하는 ‘뉴로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 창업의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벤처기업인을 꿈꾼 그는 학부 시절에도 창업을 시도했지만 전문성을 쌓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연구실을 정할 때는 GIST가 정기적으로 여는 ‘오픈랩’ 행사가 큰 도움이 됐다. 학부생들이 직접 연구실을 둘러보고 선배 연구자에게 설명을 들으며 어떤 연구가 진행되는지 미리 알 수 있는 자리다.
창업자 간 유대도 GIST의 강점으로 꼽힌다. 선배 창업자가 노하우를 전하며 후배를 돕는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빈 대표는 창업지원센터를 오가며 마주친 정지성 에스오에스랩 대표에게 “법인을 정식으로 세우고 투자를 받아보라”고 조언했고 실제 벤처캐피털을 연결해 주기도 했다.
에스오에스랩은 자율주행차와 스마트시티 핵심 부품인 소형·고정밀 라이다(LiDAR) 센서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박사 과정 중이던 정지성 대표가 2016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창업했고 지난해 6월 뉴로핏보다 먼저 코스닥에 입성했다. 최근에는 43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받았다. 올해 8월에는 엔비디아의 공식 파트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다른 GIST 창업 기업 이카루스도 교수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창업을 결심한 사례다. 무인 비행선을 띄워 항공 통신망을 구축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다. 이종원 이카루스 대표는 “교내 모의창업 프로그램(GSS)으로 시제품 제작비를 지원받아 첫 비행선을 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GIST는 2000년부터 학생과 연구자의 창업을 지원해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한국형 아이코어(I-Corps)’와 ‘이노폴리스 캠퍼스’는 물론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을 촉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팁스(TIPS)’ 운영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 연계와 자금 유치도 돕는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