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권에 머문 황유민을 위한 헌사 - US위민스 오픈 관람기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 <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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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민이 지난 5월 29일(현지 시간) 미 위스콘신주 에린의 에린힐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제80회 US여자오픈 첫날 9번 홀에서 샷하고 있다. 황유민은 3언더파 69타 공동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에린 ㅣAP ·뉴시스

황유민이 지난 5월 29일(현지 시간) 미 위스콘신주 에린의 에린힐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제80회 US여자오픈 첫날 9번 홀에서 샷하고 있다. 황유민은 3언더파 69타 공동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에린 ㅣAP ·뉴시스

위스콘신 에린 힐스 골프코스에 열린 US위민스 오픈에서 스웨덴의 마야스타크가 7언더파로 넬리 코르다(미국)와 다케다 리오(일본)를 두 타 차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스타크는 시종일관 공격적 전략과 두려움 없는 태도로 전 세계 여자 골프대회 중 최대 우승 상금(240만 달러)이 걸린 US오픈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골프대회 관전기는 우승자에 대한 헌사가 보통이지만, 이번 관전기는 하위권에 머문 황유민에 관한 이야기다.

대회가 열린 에린 힐스는 독특한 골프 코스였다. 드럼린(drumlin, 빙하가 지나가며 만든 길쭉한 언덕)과 케틀(kettle, 빙하가 녹으며 남김 웅덩이)로 구성된 골프 코스는 바람이 만든 모래 둔덕 위에 조성된 링크스 골프 코스와 흡사했다. 나무가 없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점과 와일드 러프가 페스큐 그라스로 구성된 점도 링크스 코스와 같았다.

거대한 ‘가짜 그린(falsegreen, 그린이지만 내리막 경사로 공이 머물 수 없는 곳)’으로 시작하는 그린은 경사와 굴곡이 심해서 공을 받아 내기보다는 그린 전후좌우로 튕겨내기에 바빴다. 한여름 링크스 코스처럼 그린은 딱딱했고, 그린 스피드는 여느 링크스보다 훨씬 빨랐다.

보통의 링크스 코스와 달리 세컨드 컷 러프가 길게 조성되었는데, 어프로치나 퍼팅에서 그린을 벗어난 공은 페어웨이와 퍼스트 컷을 지나쳐 세컨드 컷 러프까지 굴러갔다. 그곳에서 다시 경사가 심하고 단단하고 빠른 그린을 공략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보기 드물게 어려운 코스였고, 세상의 다양한 골프 코스를 두루 섭렵했을 베테랑 골퍼에게도 난해한 코스임이 틀림없었다.

이번 대회에는 KLPGA 멤버가 6명이나 참여했는데, 그들에게는 특히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중 황유민은 1라운드에서 3언더파, 2라운드 전반 홀에서 2언더파를 치면서, 5언더파로 리더보드 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돌격대장이라는 별명처럼 그녀는 딱딱하고 빠른 그린에서도 자신감 있게 퍼팅했다. 광활한 대지 위에서 그녀는 왜소해 보였지만, 대담한 플레이는 그녀를 작은 거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의 스코어카드는 작년까지 KLPGA 동년배 라이벌이었고 LPGA에 먼저 진출한 윤이나에게 ‘일찍 와서 뭐 했어? 그렇게 어려워?’라고 농담을 던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대회를 주최하는 낯선 골프 코스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그녀의 맹렬한 공격이 조금만 과녁을 벗어나면, 공은 그린을 벗어나서 벙커나 러프로 굴러가기 일쑤였다. 결국 그녀는 3라운드에서 9오버파, 4라운드에서 6오버파를 기록하며 공동 56위로 US오픈을 마감했다. 컷 통과자 중 그녀보다 밑에 있는 선수는 세 명밖에 없었고, 컷을 통과한 아마추어 참가자 6명 모두가 그녀보다 성적이 좋았다. 뒤늦게 분전한 윤이나는 4라운드에서만 4언더파를 쳐서 합계 이븐파로 공동 14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윤이나의 마지막 날 스코어 카드는 황유민에게 ‘어때? 만만치 않지?’라고 농담으로 응수하는 것 같았다.

골프란 한 대회의 부진으로 실망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러나 단단하게 각오하고 많은 준비를 했으며, 좋은 출발을 보인 대회에서의 막판 부진은 선수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주목받는 스타 로즈 장, AIG위민스 오픈 챔피언 부하이, US오픈 챔피언 사소 유카, 쉐브론 챔피언십 우승자 제니퍼 캅초, 지난해 투어 챔피언십 우승자 지노 티티꾼, 그 밖에도 렉시 톰슨, 하타오까 나사, 푸루에 아야까, 신지애와 김효주 같은 내로라하는 선배들은 그녀가 무너진 3라운드와 4라운드를 플레이해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

콜린 모리카와가 지난 2021년  7월에 열린 브리티시 오픈 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18번 그린에서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며 클라렛 저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콜린 모리카와가 지난 2021년 7월에 열린 브리티시 오픈 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18번 그린에서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며 클라렛 저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2021년에 이민우가 스코티시 오픈을 우승할 당시에 컷 통과자 중 최하위권인 공동 71위를 기록한 선수가 있었다. 그 대회에서 그는 처음으로 링크스 코스에서 경기해 봤다. 경기 후에 그는 ‘링크스 코스가 무엇인지 감을 잡은 것 같다’라는 두려움 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로열 세인트 조지에서 열린 149회 디오픈을 우승했다. 2003년 벤 커티스 이후에 처음으로 디오픈 데뷔전에서 우승한 선수인 그가 바로 콜린 모리가와다. 그는 지금 PGA투어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다.
훌륭한 선수는 필요할 때 공격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려움 없는 태도다. 앞선 칼럼에서 말한 것처럼 공격적인 것은 공략 방법에 대한 선택이고, 두려움 없음은 선택을 실행하는 태도다. US오픈 1, 2라운드에서 그녀의 두려움 없는 태도가 TV를 통해 전 세계 골프 팬에게 여러 차례 전달되었다. 그리하기에 누군가는 그녀를 보며 콜린 모리가와를 떠올렸을 것이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골프: 골프의 성지에서 깨달은 삶의 교훈’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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