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야구가 소재인 예능프로그램인데. 야구에 대한 존중이 없다. ‘한국 야구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한국야구 레전드인 이종범 전 KT위즈 코치 논란이 식을 줄 모른다. 이 전 코치는 지난달 27일 갑작스레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뒤 팀을 떠났다. 이유가 곧 밝혀졌다. 야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다. 오는 9월 방송이 재개될 ‘최강야구’에서 감독을 맡았다.
소속팀 KT는 당혹스럽다. 지금은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다. 치열한 순위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코치가 시즌 도중 그만뒀다. 그것도 코칭스태프 핵심인 1군 타격코치가 말이다. 구단은 만류했다. 하지만 결국 이 전 코치의 의지가 완강했다. 해태타이거즈 시절 팀 선배였던 이강철 감독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프로야구에서 시즌 중 코치를 교체하는 일은 드물다. 보통 성적이 안 좋은 팀이 분위기를 바꾸려 할 때 그런다. 이때 주로 붙는 수식어가 ‘극약처방’이다. 그만큼 시즌 중 코치를 바꾸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 전 코치는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이기에 더 아쉽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그는 “최강야구를 살리는 것이 한국 야구 붐을 더 크게 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야구 예능프로그램이 야구를 살린다는 답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최강야구’는 진짜 야구가 아니다. 야구를 소재로 한 예능이다. 시청자들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각본과 편집이 존재한다.
‘최강야구’가 야구 인기 상승에 도움을 준 것도 맞다. 하지만 반대로 높아진 야구 인기가 ‘최강야구’를 키운 것도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야구와 야구팬들에 대한 존중이다. 그런데 다시 시작하려는 ‘최강야구’는 그런 존중을 싹 무시했다.
야구 선후배와 다양하게 개인적 인연이 얽힌 이 전 코치야 그렇다 쳐도 방송사는 더 실망스럽다. 프로그램의 성공만 생각한 나머지 현역 코치를 밭에서 무 뽑듯 뽑아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어떤 후폭풍이 일어날지는 신경도 쓰지 않은 모습이다. “어쩔 수 없다.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만, 어느 정도 이렇게 될 걸 몰랐던 것도 아니다”는 제작 책임자의 인터뷰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최강야구’가 아닌 ‘최악야구’다.
이미 1년 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시즌 도중 소속팀 울산 HD를 떠나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K리그 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대한축구협회 앞에는 근조화환이 가득했다. 경기장에는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 현재도 홍 감독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그래도 홍 감독은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있었다. 아시안컵 부진으로 추락한 한국 축구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그것도 아니다. 비난을 자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어떤 이는 ‘그깟 야구가 뭐라고 이 난리야’라고 할지 모른다.‘그깟 야구’를 보기 위해 지난해 1000만 명이 넘는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깟 야구’ 때문에 팬들은 한 벌에 20만 원에 육박하는 유니폼을 줄 서가며 구매한다. ‘그깟 야구’에 국민들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쨌든 프로그램은 제작이 진행 중이고 언젠가 방송될 것이다. 야구와 야구팬에 대한 존중이 없는 야구 예능이 잘 굴러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