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관세정책이 사법부 판단에 따라 출렁이고 있다. 1심에 해당하는 연방국제통상법원(CIT)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제동을 걸었지만 항소법원이 하루 만에 판결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켰다. 백악관은 사법부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다른 법 조항을 이용해 관세정책을 이어가려는 구상을 짜고 있다.
○관세효력 당분간 유지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은 29일(현지시간) “추가 통지가 있을 때까지” 1심인 연방국제통상법원(CIT)의 판결 효력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전날 백악관은 CIT의 판결이 나오자 즉각 항소하면서 이 신청을 고려하는 동안 즉각적인 임시 효력정지(immediate administrative stay)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항소법원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양측의 논리를 항소법원이 확인할 때까지 관세 무효화 조치의 효력을 중단시켰다.
중단기간은 최소 6월9일까지다. 항소법원이 원고(중소기업 5개사와 주정부 12곳) 및 피고(미국 정부 및 관계기관)의 답변서를 이날까지 받은 후 검토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항소법원은 이후 항소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1심 판결 효력을 중단시킬지 여부를 다시 판단할 예정이다.
백악관은 항소법원이 관세의 효력을 되살리지 않을 경우에는 “국가 안보와 경제에 초래될 수 있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즉각 대법원에 긴급구제를 신청하겠다고 위협했다. 항소법원의 이번 조치는 ‘대법원 직행’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에 “CIT의 판결은 너무 정치적”이라면서 “대법원이 끔찍하고 국가를 위협하는 결정을 단호하게 뒤집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관세부과가 의회권한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한 (1심) 판결은 관세에 대해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면서 “수백명의 정치인들이 워싱턴DC에 모여 수주, 수개월 동안 우리를 불공정하게 대하는 다른 나라에 어떤 것을 부과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IEEPA 대체할 관세근거 검토
백악관은 CIT가 전날 무효화 결정을 내린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대신 다른 법률적 근거를 찾아 관세정책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취임 전부터 관세정책의 근거로 IEEPA를 쓰는 것이 법적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의회를 경유하지 않고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IEEPA를 택했다.
하지만 IEEPA가 사법부의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권한이 다소 적은 다른 법률을 이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백악관 내에서 검토되는 방안 중 하나는 1974년 무역법 122조와 301조를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122조는 대통령이 무역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150일 동안 최고 15%까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날 CIT는 IEEPA를 근거로 무역적자를 보정하기 위해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면서 122조의 존재를 근거로 들었다. 대통령이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권한과 제약이 이 조항에 이미 담겨 있다는 것으로, ‘정답’에 대한 힌트를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만 122조의 ‘150일’ 제한은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장기적 관세부과에는 적합치 않다. 이 때문에 미국에 불공정한 국가에 대해 관세 및 수출통제 등 여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301조를 병용해서 IEEPA와 비슷한 효과를 노리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에서 301조를 이용해 중국에 관세를 부과했다.
이와 관련해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고문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그것은 경제팀이 고려하는 아이디어 같은 것”이라면서 이런 논의가 있음을 인정했다. 나바로 고문은 또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 등도 대안으로 언급했다.
시장은 관세정책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관세정책이 쉽사리 되돌려질 가능성은 낮게 보는 편이다. 미국 증시는 전날 CIT 판결 영향으로 개장 직후 상승세를 띠었으나 이후 상승폭은 상당히 줄었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0.4% 오르는 데 그쳤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