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심리] 폴 케네디 저서 ‘강대국의 흥망’ 통찰… 돈만 밝히는 트럼프 달리 봐야
수익성 우선으로 메뉴 짜는 맥도날드
하지만 미국이 통일성과 균일함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있다. 바로 다양성이다. 맥도날드 창시자 레이 크록은 사업 초창기 미국 전역 매장이 동일한 메뉴를 갖추기를 원했다. 그러나 각 지점은 지역 여건에 맞는 메뉴를 개발해 제공했다. 맥너겟도 원래는 지역 메뉴로 출발해 훗날 세계 메뉴로 정식 채택된 사례다. 비프스테이크 햄버거나 랍스터 햄버거가 개발되기도 했고 그리스, 아라비아, 캐나다 등 해외 지점도 현지 사정에 맞는 메뉴를 만들어 팔았다. 통일성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 굉장히 많은 다양성이 있다는 것. 이것이 두 번째 특성이었다.
그런데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비프스테이크 햄버거, 랍스터 햄버거는 독특한 지역 메뉴로 이름을 알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됐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의 맛과 정체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익성, 즉 돈이었다. 수중에 남는 돈이 없으면 지역 정체성도, 다양성도 필요 없다. 돈이 되느냐, 수익성이 있느냐. 이것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가장 미국적이라는 게 이 칼럼이 강조하는 바였다.
이 칼럼은 정치적인 글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개념을 적용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달리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트럼프에 대해서는 비판 여론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미국은 그간 동맹국을 중시하고 민주주의, 평화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내세우며 세계적으로 지도력을 행사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받기를, 정치·사회적으로 높은 위상을 갖기를 원해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오직 돈만 앞세운다. 그동안 구축해온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관계를 망치면서까지 수익을 추구한다. 이로써 미국은 돈을 좀 더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적 리더로서 인정받기는 힘들게 됐다. 소중한 가치를, 과거 강대국으로서 위상을 잃어버려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 돈만 아는 트럼프 탓에 미국이 망해가고 있는 것이다.폴 케네디가 쓴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사회과학 고전이 있다. 근대 이후 강대국으로 불리는 나라는 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 순으로 계속 변모했다. 이때 강대국이 왜 강대국이 됐고 어떻게 강대국에서 물러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케네디는 강대국이 되는 가장 근본적 요소는 경제력, 즉 돈이라고 봤다. 어느 시대든 가장 돈 많은 나라가 강대국이 된다. 정치적 위상, 리더십, 문화 자본 등은 돈이 많으면 자연적으로 뒤따라온다. 하지만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돈을 무시한 채 그런 것들에 초점을 둔다. 이 책에 따르면 돈 없는 나라의 정치적 위상, 리더십은 결국 쇠퇴하게 돼 있다. 이때 정치적 위상 등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돈만 많이 버는 국가가 있으면, 기존 강대국보다 더 큰 경제력을 갖춘 나라가 있으면 강대국 지위가 그쪽으로 옮겨간다. 경제력을 추구하다 보면 강대국이 되고, 경제력을 무시하고 다른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두면 강대국에서 물러나게 된다는 게 케네디가 책에서 주장한 바다.
자신들 힘이 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정치·사회문화적 위상만 중시하다가 망한 대표적인 예로 피렌체 메디치 가문이 있다. 메디치는 유명한 금융 가문이었는데, 피렌체를 정치적으로 지배한 것은 물론, 르네상스의 대표적 문화 국가로 발돋움하게 했다. 메디치라는 이름은 지금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의 상징으로 거론된다.
돈으로 흥한 강대국 돈으로 망한다3대에 걸친 메디치 가문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인물은 로렌초 메디치다. 피렌체의 정치·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로렌초는 그만큼 메디치가 인물 가운데 가장 명성이 높다. 하지만 바로 그때부터 메디치가는 망해가고 있었다.메디치 가문은 지금으로 따지면 하나의 금융기업이다. 그런데 로렌초는 기업 운영은 제쳐둔 채 명성을 높이는 일에만 몰두했다. 계속 적자를 냈고 유럽 각지에 있던 메디치 은행들이 실적 악화로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로렌초가 가업을 물려받을 때 10개였던 은행 지점은 로렌초가 사망할 당시 피렌체 본점 하나로 줄었다. 그리고 로렌초 사망 2년 뒤 피렌체 본점마저 폐업하면서 메디치 가문은 사라졌다. 피렌체 유력 가문인 메디치가 몰락하자 피렌체도 몰락했고, 그 후 피렌체는 한 번도 역사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돈을 많이 벌고 있을 때 메디치 가문은 정치·문화예술 분야에서 압도적 강자였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자 메디치가와 피렌체 모두 망했다. 메디치가 얘기는 경제력을 무시한 채 정치나 문화예술만 강조하면 결국 정치·사회문화적 위상 또한 사라지게 된다는 케네디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에피소드가 됐다.
이런 관점에서 돈만 밝히는 트럼프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전임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시한 것은 세계적 리더로서 미국의 위상이었다. 다른 나라로부터 칭송받고 존경받는 미국, 정치적 위상이 그 어느 나라보다 높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돈은 중시하지 않았고, 그래서 미국 경제력은 점차 떨어졌다. 케네디가 말하는 ‘강대국이 몰락해가는 과정’의 전형적인 예다. 반면 트럼프는 세계적 지도자라는 위치는 완전히 무시한 채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만 몰두한다. 정치적 리더십 측면에서 보면 트럼프의 미국은 망하고 있다. 하지만 케네디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트럼프의 미국은 애초에 미국이 강대국이 됐던 조건인 경제력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정치·사회문화 같은 외면적인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좀 더 근본적인 미국의 힘인 경제력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트럼프는 미국을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되살리고 있다.
로렌초는 온건한 정치와 아낌없는 예술 후원으로 당대 큰 존경과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그사이 메디치 은행은 계속해서 문을 닫았다. 만약 이때 후계자가 나타나 가문의 예술 후원을 끊고 은행 지점들을 되살리려는 조치를 했다면 어땠을까. 메디치가의 전통적인 미덕을 무시하고 가문을 망하게 한다는 비난을 받았을 테다. 하지만 메디치가가 위기를 딛고 다시 예술 후원을 이어갈 힘을 가질 수 있었다면 바로 이 후계자 덕분이었을 것이다. 최소한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받는 사이 모든 은행 지점이 문을 닫고 메디치가가 망하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가 됐으리라 본다. 이 후계자야말로 망해가는 메디치를 부활한 인물로 기록됐을지 모른다.
‘아메리칸 드림’은 잘살고 싶다는 꿈
요즘 논란을 낳고 있는 트럼프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이전 시기 미국은 경제력을 무시한 채 정치적 위상, 세계적 리더십을 높이는 데만 몰두했다. 로렌초 같은 모습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칭송받기보다 돈이 더 많고, 그래서 미국의 경제적 힘이 건재하기를 원한다. 트럼프 정책들이 성공하면 정말로 미국의 힘은 오랜 기간 연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측면에서 보면 트럼프의 상징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제대로 된 방향일 수도 있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06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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