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돈 1억으로 50억 굴린다"…'이거' 터지면 끝장 [글로벌 머니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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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9.17 07:00 수정2025.09.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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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사냥부터 규제 역이용…세계 경제 흔드는 '차익 거래' [글로벌 머니 X파일]

최근 혁신보다 복잡한 관련 시스템을 활용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차익 거래 경제'가 부상하고 있다. 지정학적 파편화, 거대 산업 정책의 부활, 시장의 초금융화, 알고리즘 기술의 가속화 등이 요인이다. 이런 방식의 가치 창출이 글로벌 경제의 인센티브 구조를 뒤틀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임의 규칙’ 공략

1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이 지난 15일 미국 중앙은행(Fed)의 단기 대출 창구(Standing Repo Facility·SRF)에서 하루 만에 15억 달러를 빌렸다. 로이터통신은 "법인세 납부, 미국 재무부 부채 정산 마감 등"을 차입 이유로 설명했다. 일각에선 미국 국채 '베이시스 거래'(Basis Trade) 관련 차익거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단기 자금 시장이 압박받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베이시스 거래는 미국 국채 현물(실제 채권)을 사는 동시에, 국채 선물(미래에 살 것을 약속하는 계약)을 파는 것이다. 현물과 선물 사이의 작은 가격 차이로 돈을 버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차익 거래 경제' 중 하나다. 문제는 여기에 ‘레버리지(지렛대)’가 붙으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조금 사냥부터 규제 역이용…세계 경제 흔드는 '차익 거래' [글로벌 머니 X파일]

투자자는 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려 거래 규모를 수십 배로 키운다. 자기 돈 1억 원으로 50억 원을 굴리는 셈이다. 이 전략이 잘 풀리면 큰 수익을 얻지만 시장이 조금만 흔들려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동시에 다수의 펀드가 포지션을 정리하면서 시장 전체가 요동칠 수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 국채 가격이 급변하자 투자자는 한꺼번에 거래를 청산했고, 미국 국채 금리가 단기간 급등했다. 결국 Fed가 시장 안정을 위해 1조 달러의 돈을 긴급 투입해야 했다. 최근 들어 이런 위험이 다시 커지고 있다. SRF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 국채가 글로벌 무위험 자산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포지션 청산에 따른 변동성 급증은 다른 자산군과 국가들로 전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스템 게이밍'이 지배하는 시대

현재 글로벌 '차익 거래 경제'는 크게 네 가지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정학적 파편화, 거대 산업 정책의 부활, 시장의 초금융화, 알고리즘 기술의 가속화 등이다. 이 네 가지 힘은 서로를 증폭하며 동력을 키우고 있다.

지정학적 파편화(Geopolitical Fragmentation)는 주로 최근 미국과 중국의 경쟁으로 나타났다. 미·중 패권 경쟁과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은 국가별 상이한 관세와 규제 수준을 만들어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높은 불확실성과 미지의 세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적으로 부과된 무역 제한 조치는 약 3000건에 달했다. 2019년의 세 배에 육박했다.

보조금 사냥부터 규제 역이용…세계 경제 흔드는 '차익 거래' [글로벌 머니 X파일]

이에 따라 이른바 '관할권 차익 거래' 기회가 증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파편화가 최악의 경우 전 세계 GDP의 7%(약 7조 4000억 달러)에 달하는 생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불확실성은 비용을 초래한다. 양자 관세율이 오르내리는 세상에서 계획 수립은 어려워진다. 그 결과는 투자 결정은 연기된다"고 현 진단했다.

산업 정책의 '빅뱅'도 '차익 거래 경제'의 주요 동력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유럽연합(EU)의 대응 등 대규모 보조금 정책은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복잡한 자격 요건과 규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의도치 않게 '보조금 사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초금융화(Hyper-Financialization)도 '차익 거래 경제'의 요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은행 규제는 복잡한 거래 전략과 리스크를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비은행 금융 중개, 이른바 '그림자 금융' 부문으로 이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국 국채 베이시스 거래와 같은 초고레버리지 차익 거래 시장이 급성장했다.

'차익 거래 경제'의 마지막 엔진은 알고리즘 가속화다. 인공지능(AI)과 고성능 컴퓨팅은 금융 시장뿐만 아니라 디지털 광고, 블록체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찰나의 차익 거래 기회를 포착하고 대규모로 실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네 가지 동력이 결합하면서 나온 복잡성에 대한 해결사(차익 거래자)가 등장했다.

'차익 거래 경제'가 성장하면서 인재도 관련 시장에 몰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통 경제의 장기적인 활력은 인재들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최근 일부 인재들은 혁신 대신 차익 거래 경제 시스템의 빈틈을 공략해 부를 축적하는 경로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로 향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미국 하버드대 졸업생 진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졸업생의 21%가 금융권으로, 14%가 컨설팅 업계로 향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 기술, 컨설팅 세 분야가 전체 졸업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런 쏠림 현상의 배경은 압도적인 보상 체계다. 미국 뉴욕주 감사원에 따르면 작년 뉴욕 증권업계의 보너스 풀 규모는 전년 대비 31% 급증한 475억 달러에 달했다. 평균 보너스는 24만 400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엘리트 계층이 부를 이전하고 중개하는 분야로 집중됐고, 이른바 '지대 추구' 사이클이 강화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조금 사냥부터 규제 역이용…세계 경제 흔드는 '차익 거래' [글로벌 머니 X파일]

막대한 인적 자본을 흡수한 금융 산업은 사회적 가치 창출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뉴욕대의 토마스 필리폰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저축하는 사람에게서 빌리는 사람에게로 1달러를 중개하는 데 드는 '단위 비용'은 지난 130년간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약 2% 수준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필리폰 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 정보 기술의 엄청난 발전이 금융 중개 비용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차익 거래 경제는 진공 상태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정부의 선의로 만들어진 정책, 시장의 구조적 비효율성, 기술적 허점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난다. 복잡하게 얽힌 규정과 제도의 미세한 틈새는 누군가에게는 비용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합법적' 기회가 된다.

보조금과 규제 차익 거래

정부의 보조금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3690억 달러에 이르는 친환경 보조금을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보조금 사냥'의 거대한 시장도 열었다는 지적이다. IRA의 소비자용 전기차 세액공제는 엄격한 원산지 규정을 포함했다 하지만 상업용 차량 세액공제에는 해당 규정이 없었다.

미국 재무부는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을 임대 형태로 제공할 경우 이를 '상업용'으로 간주해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허용했다. 거대한 우회로를 열어준 것이다. 일부 해외 제조사는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 자사 전기차에 대해 리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보조금 제도를 우회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런 차익 거래의 창구는 곧 닫힌다. 지난 7월 4일 발효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는 이런 보조금 누수를 정조준했다. 이 법안에 따라 상용 전기차 세액공제는 이달 30일 이후 취득분부터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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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의 배출권거래제(ETS)도 비슷하다. EU가 작년부터 해운업을 ETS에 포함하자, 이른바 '포트 호핑(Port Hopping)'이라는 규제 회피 전략이 나왔다. EU와 비EU 항구 간 항해는 배출량의 50%에 대해 배출권 구매 의무가 부과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최종 목적지 직전에 인접한 비EU 항구(모로코 탕헤르 메드 등)에 잠시 기항해 화물을 옮겨 싣는 업체가 늘었다.

기술의 발전은 차익 거래의 무대를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했다. 블록체인은 알고리즘이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어 막대한 가치를 추출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더리움 등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는 사용자의 거래 요청이 블록에 최종 기록되기 전 '멤풀'이라는 공개된 대기 공간에 잠시 머무른다.

MEV(최대 추출 가능 가치) 붓들은 이 정보를 미리 보고, 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 자신의 거래를 끼워 넣거나 순서를 바꾼다. 대규모 매수 주문을 포착한 붓이 한발 앞서 매수하고, 가격이 오른 직후 매도해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0년 이후 이더리움에서만 MEV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추출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차익 거래 경제'

한국에도 정책 설계의 허점을 이용한 차익 거래가 있다. 부동산 시장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대표적이다. LTV·DSR는 예외·만기·업권 경계를 이용해 상환능력 개선 없이 레버리지를 키울 수 있다. 은행 주담대가 조여지면 DSR 제외·완화 상품(전세·중도금·일부 정책대출)이나 제2금융권·사업자대출로 이동해 규제 강도가 낮은 영역으로 포지션을 옮기는 풍선효과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생산성이나 소득이 아니라 규정의 빈틈을 ‘가격’처럼 거래해 한도·수익을 늘린다. 이것도 위험과 비용을 시스템으로 전가하기 때문에 차익 거래의 요건을 충족한다. 규제의 역설 현상도 나타났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을 제한하는 DSR 규제는 소득이 높은 고소득층에게는 큰 장벽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득이 낮은 서민과 청년층은 DSR 규제에 막혀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기 힘들어졌다.

보조금 사냥부터 규제 역이용…세계 경제 흔드는 '차익 거래' [글로벌 머니 X파일]

에너지 정책 분야에서는 태양광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보조금 '쪼개기'가 문제였다. 일부 대규모 사업자가 발전소를 서류상으로만 여러 개로 쪼개어 등록하고, 소규모 사업자에게 주는 고액의 보조금을 부당하게 챙긴 사례가 있었다. 이것도 정책의 선한 의도를 악용한 대표적인 '보조금 사냥'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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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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