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로데오 바로 앞, 후지필름 사옥 지하에 숨겨진 전시장 '파티클'로 내려가면 반쯤 감긴 눈과 동그란 코, 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툼한 수염을 기른 채 나른한 표정을 짓는 남성 조형물이 관객을 맞이한다. 미니어처 장난감 피규어처럼 보이는 조형물들은 모두 한 작가가 자신의 자아를 형상화해 만든 '아트 토이'다.
아트 토이는 '아트(art)'와 장난감(toy)'가 결합되어 태어난 새로운 예술 장르다. 순수 미술과 디자인, 그리고 상품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미술계에 등장했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외형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레고 조립처럼 쉬워 보이지만,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 바르는 색, 설치하는 구조에 따라 결과물이 완벽히 달라질 만큼 예민한 작업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쏙 빼닮은 아트 토이로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주인공은 아트토이 작가 토베이다. 그는 레진을 사용해 미니어처 인간 'P'를 만들며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토베이는 자신의 본명과 나이를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작가의 정보를 모를수록 더욱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대를 졸업해 사업을 하던 그는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좌절 대신 '즐기는 것을 하자'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당시 그가 가장 하고 싶던 일은 '작가'. 그렇게 그는 2012년부터 아트 토이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5년 후인 2017년, 그의 노력은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아트 토이 전문 매체인 토이크로니클에서 선정한 ‘올해의 토이’에 그의 작품이 선정되면서다. 이번 파티클에서 열리는 전시 '브레이킹 더 룰스'는 그의 인생 3번째 개인전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까지 걸어온 작가로서의 삶, 개인의 고민과 성찰, 내면의 변화를 보여준다.
토베이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새로운 재료 실험에 나섰다. 기존에 계속 사용했던 합성수지 레진을 넘어 브론즈 조각에 도전한 것이다. 레진은 아트 토이 장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다. 결과물이 가볍고 채색이 쉬우며 제작 공정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토베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 단계 발전한 스스로의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브론즈 토이 제작에 돌입했다. 세밀한 조각과 반복적인 세공작업을 필요로 하지만, 브론즈만이 줄 수 있는 색다른 느낌을 내기 위해 수고로운 과정을 택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언브레이커블 라인(Unbreakable Line)'도 브론즈 작품이다. 하늘을 향해 팔을 곧게 펴 붓질을 하는 인물을 표현했다. 토베이는 작품 속 역동적인 모습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내는 모든 이들을 향한 응원과 존경의 마음을 나타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가 'P'는 다양한 옷을 입었다. 청바지를 입고 알록달록한 모자와 운동화를 신거나, 작업용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착용하기도 했다. 가운을 걸치고 커피를 든 채 편안한 모습을 한 작품도 있다. 각 옷차림에도 모두 의미가 있다. 다채로운 색감을 두른 작품으로는 순수한 지난날의 향수를, 글러브와 헤드기어에는 쉽게 휘둘리지 않는 굳건한 자신의 신념을, 핑크색 가운과 커피 한 잔에는 남들의 시선과 바쁜 일상을 벗어난 쉼과 여유를 담았다. 전시는 2025년 1월 19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