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정치의 역할' 묻는 트럼프 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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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정치의 역할' 묻는 트럼프 관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오른팔이자 미국과의 관세 협상 담당 장관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받고 순간 당황했다. 본인의 자리가 대통령 책상 정면에 배치돼 트럼프와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원래 협상 상대인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등은 옆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깜짝 등장한 트럼프는 자동차를 시작으로 안보 비용 불만까지 쏟아내며 50분간 아카자와를 압박했다. ‘적진’에서도 차분했던 아카자와는 ‘조기 합의에 의견 일치’라는 성과를 갖고 돌아왔다. 그런 아카자와에게 일본 정치권 일각은 ‘저자세’를 트집 잡았다.

협상 발목 잡는 日정치권

저자세 논란은 아카자와가 협상 후 기자회견에서 본인의 ‘급’이 낮아도 한참 낮은데 트럼프가 직접 나와 얘기한 데 대해 감사하다고 발언하면서 불거졌다. 야당을 중심으로 “나라를 대표해 갔으면 자부심을 가져야지, 왜 굽신거렸냐”는 지적이 나왔다. 아카자와는 “트럼프와 내가 동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 격이 낮은 것은 사실”이라며 “협상장에서 할 말은 당연히 한다”고 받아쳤다.

정치권의 트집에도 일본 내 여론은 아카자와가 첫 협상에서 향후 대화를 이어갈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국익을 위해 몸을 낮췄다는 평가다. 그 덕분에 일본 정부는 다음 협상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2017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와 트럼프의 회담 때 외무상으로 배석한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우선은 협상 기반을 단단히 마련해야 한다. 성실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뭘 해도 소용없다.”

일본 정치권은 협상 중인 정부를 돕기는커녕 헛발질만 일삼고 있다. 일본은 향후 미국의 요구에 따라 방위비 부담이 늘어날 경우 증세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여야 일각에선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비세 감세’를 들고나왔다가 감세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자중지란에 빠졌다. ‘관세는 국난’이라는 핑계로 포퓰리즘 공약을 꺼냈다가 혼란만 키운 모습이다. 관세 대응이라며 전 국민 1인당 최대 5만엔 ‘현금 살포’를 검토하다가 여론 반대에 접은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우선 힘 실어줄 때

일본 학계에선 ‘내부 총질’에 골몰할 시간에 트럼프 관세를 ‘기회’로 만들 생각부터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산 쌀 관세 인하는 일본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선거를 앞둔 만큼 농가의 반발도 예상되지만, 치솟는 쌀값에 부담이 커진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일본은 이미 1980년대 미국과 무역마찰 당시 자동차 관세 압박에 따라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려 세계적 자동차 강국으로 올라선 경험이 있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앞둔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다. 대미 무역흑자는 물론 소고기, 자동차 등 비관세 장벽도 미국이 문제 삼고 있다. 방위비 분담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협상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부터 중요하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각에선 대행 체제 정부가 협상에 나서는 것부터 마뜩잖게 생각한다. 또한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나눠주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일본이 했던 헛발질이다. 우리도 장관‘급’이 간다. 정치권이 우선 힘을 실어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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