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임수]관세 포화 속 빛나는 현대차-포스코 ‘쇳물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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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1, 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관계는 가전의 삼성·LG전자, 유통의 롯데·신세계와 비슷하다. 외환위기로 쓰러진 한보철강 인수를 놓고 포스코와 현대차그룹이 맞붙은 것을 시작으로, 최대 라이벌이자 앙숙으로 사사건건 부딪혔다. 한보철강을 품에 안은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이 용광로를 갖춘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하자, 30여 년 독점 체제가 깨지게 된 포스코가 자동차용 강판 공급을 중단한 건 유명한 일화다. 대통령을 비롯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총출동한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기공식에도 포스코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런 두 회사가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이례적으로 손을 맞잡았다. 현대제철이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에 짓는 제철소에 포스코가 함께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미국에 21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엔 현대제철이 58억 달러를 들여 루이지애나에 연산 270만 t 규모의 자동차 강판 제철소를 건립하는 게 포함됐는데, 포스코가 최소 1조 원 이상을 투입하고 일부 생산 물량을 직접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어제의 적을 동지로 돌려세운 건 트럼프발 관세다. 미국은 금액 기준으로 한국 철강 기업들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2일부터 수입 철강과 파생상품에 25%의 관세를 때리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 철강은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가뜩이나 중국산 덤핑 공세에 밀리던 국내 철강 기업들은 트럼프발 관세가 현실화되자 지난달에만 미국 수출액이 16% 넘게 줄었다. 트럼프의 ‘관세 철벽’을 넘으려면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동맹은 윈윈 전략으로 꼽힌다. 현대제철로서는 포스코와 힘을 합치면 현지 투자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현대제철은 당초 투자금 58억 달러 중 일부를 외부에서 조달할 계획이었는데, 미국 진출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자금 사정까지 넉넉한 포스코가 제격이다. 10년 넘게 미국 제철소 설립을 놓고 고심하던 포스코 역시 나 홀로 투자의 부담을 덜면서 미국 진출이라는 해묵은 숙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 철강 ‘빅2’가 해외에서 공동 투자와 생산에 나선다는 건 과거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포스코와 현대차그룹은 철강 외에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대응해 이차전지 소재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와 트럼프 관세의 틈바구니에 껴 휘청대는 다른 산업에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우리 기업들의 협력을 기대한다. 경쟁 상대와도 손잡을 수 있는 기업들의 과감하고 유연한 전략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트럼프 스톰’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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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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