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중국 견제, 트럼프는 얼마나 진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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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폭주 뒤 “中 꺾기 위해서”라는데
중-러 분열 노린 ‘逆키신저’에 서방만 흔들
2기 안보팀 ‘중국 매파’ 목소리 실종 상태
中 ‘롱게임’에 맞설 의지도 능력도 안 보여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맨해튼의 젊은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를 처음 만난 것은 1989년 뉴욕의 한 사교 파티에서였다. 당시 42세의 트럼프는 자신 못지않게 유명한 두 기자를 보자마자 “두 사람이 날 인터뷰하면 굉장하지 않겠느냐”고 즉석 제안했다. 그렇게 이뤄진 인터뷰 녹음테이프는 자료 더미 속에 30여 년간 처박혀 있었고, 뒤늦게 우드워드가 작년 말 펴낸 책 ‘전쟁(War)’에 그 내용이 소개됐다.

트럼프는 자신의 모든 성공 비결을 ‘본능’이라고 설명했다. “내 최악의 거래는 내 본능을 따르지 않은 것이었다. 내 최상의 거래는 모든 이들이 절대 안 될 거라고 해도 순전히 내 본능에 따라 만든 거래였다.” 사람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본능이 가리키는 대로 “어떤 사람에겐 킬러, 어떤 사람에겐 캔디, 또 어떤 사람에겐 둘 다”가 되는 식이다.

그의 기본 철학은 어떤 경우에도 굽히지 말라는 것. “검사관들이 와선 완벽한 건물에 위반 딱지를 끊곤 한다. 나는 첫날부터 ‘꺼져라’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더 많은 딱지를 붙인다. 계속 더 많이. 하지만 한 달이면 그들은 ‘이런 더러운 자식’이라 욕하고선 다른 누군가에게 가고 만다. 한 번 굽히면 큰 골칫거리가 된다. 깡패도, 노조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오직 싸우고 이겨서 살아남는 본능으로 길러진 사람이다. 굽히지 않으면 그 어떤 손해도 승리로 만들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대선에 패배하고도 4년간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외친 끝에 백악관에 재입성한 그에겐 영원한 승리의 생존 본능만 있을 뿐이다.

트럼프 2기 출범 3개월, 그는 충동적 관세 폭탄으로 전 세계를 예측불허의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막무가내로 질러놓고 아차 싶으면 ‘유연성’을 내세워 뒤집고 미룬다. 그렇다고 굽히거나 물러선 것은 아니고 모두 ‘미치광이 전략’일 뿐이란다. 트럼프야말로 임금은 어떤 부끄러움도 없다는 군왕무치(君王無恥),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난폭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을 21세기에 구현하고 있는 ‘혼돈의 제왕’일 것이다.

이런 트럼프의 일관된 비일관성에는 그를 변호해야 하는 참모들도 뭐라 둘러대기 난감할 따름이다. 다만 좌충우돌 관세 폭주 끝에 마주한 중국과의 ‘치킨 게임’ 상황은 미국 내 초당적 반중 정서와 서방 진영의 중국 경계론에 기댈 수 있는, 즉 모든 혼란은 결국 중국을 꺾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최상의 변명이 됐다.

하지만 과연 트럼프는 이런 중국 견제론에 얼마나 진심일까. 사실 그에게 정책의 큰 그림은 없다. 그저 파편적인 생각뿐이다. 트럼프 1기 때도 참모들은 이런 ‘흩어진 점들의 군도(archipelago of dots·존 볼턴의 비유)’를 갖고 자기 해석대로 정책화해야 했다. 그러니 ‘트럼프 말 따로, 행정부 정책 따로’가 비일비재하면서 잦은 참모 경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트럼프는 중국에 대해서도 무역적자에 대한 불만, 시진핑 주석과의 ‘좋았던 관계’ 이상의 정책 방향을 얘기한 적이 없다.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대만을 방어할 것이냐’는 질문에조차 “내 카드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며 언급을 피해 왔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중국에 다각적 공세를 펴면서 협상에 나서라는 신호를 줄기차게 보내고 있다.

혹자는 러시아와의 밀착도 중-러 간 분열을 유도하기 위한 ‘역(逆)키신저 전략’의 가동이라고 해석하지만 그건 트럼프와 푸틴 간 브로맨스를 위한 알리바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중-러 ‘무제한 협력’에는 균열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서방 동맹에만 쩍쩍 금이 가고 있다. 결국 트럼프의 본능은 차르 푸틴, 황제 시진핑과의 ‘빅딜 쇼’로만 향하고 있다.

외교안보팀도 그런 트럼프 입맛에 맞추기 바쁘다. 반중(反中) 강경파로 꼽히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세계에 하나의 강대국만 있는 단극(單極) 질서는 비정상적”이라며 중-러가 주창하는 다극(多極) 체제론에 사실상 동조하고 나섰고, 중국 견제론자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최근엔 국가안보회의(NSC) 관료들이 ‘불필요하게 중국을 도발하는 네오콘’으로 지목돼 해고되면서 중국 매파(China hawks)는 아예 설자리를 잃은 분위기다.

트럼프 취임 불과 석 달, 앞으로 45개월이나 남았다. 전 세계는 벌써 묻고 있다. 트럼프에게 과연 중국을 꺾겠다는 의지는 있는가. 미국은 정작 100년의 ‘롱 게임’을 벌이는 중국을 주저앉힐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세계 질서를 파괴한 채 그 잔해 위에서 자기만의 승리를 외치는 트럼프를 바라보는 동맹의 처지는 어떨지 그 미래가 걱정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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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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