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정 서는 쿠바 혁명 주역
베네수·이란 지도자 때와 달리
무력 개입 아닌 法 절차로 접근
트럼프도 군대 사용 언급 피해
경제난에 벼랑끝 몰린 주민들
"누구든 쿠바 변화 이끌어달라"
"전기가 또 나갔네요. 하루에 20시간까지 정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쿠바 아바나에서 전화를 받은 정호현 쿠바 한글학교 교장은 "친미 정권 교체든 내부의 변화든 상관없이, '배고픔'으로 인해 미국이든 쿠바 내부 세력이든 누구든 변화를 끌어내기만 하면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때부터 정전은 있었지만,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사건 이후 기름이 고갈돼 교통이 끊어져 고통이 극심하다"고 설명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미국 주류 언론에서는 미국 정부가 쿠바의 전 대통령이자 혁명 지도자인 라울 카스트로를 '살인 및 미국 시민 살해 음모 혐의'로 전격 기소했다는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쿠바 국민이 경제 제재로 인해 오랜 기간 고통을 받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수십 년간 쿠바를 지배해온 카스트로 가문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미국 법무부는 이날 1996년 미국 마이애미에 기반을 둔 쿠바 망명 단체인 '구출의 형제들'이 운용하던 항공기 2대를 쿠바군이 격추해 탑승자 4명이 사망한 사건에 간여한 혐의로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포함한 6명을 기소했다. 사망자 중 3명은 미국 시민이었고 나머지 1명은 미국 거주인이었다. 카스트로 전 대통령은 사건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자신의 행정부가 쿠바에 대한 경제적 압박과 막후 실력자인 카스트로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를 통해 "쿠바를 해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바 정부는 즉각 거세게 반발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이번 기소를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명백한 정치적 공작"으로 규정하며 강력히 규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카스트로 전 대통령 기소의 경우 최근 베네수엘라나 이란 등 적대국의 지도자를 군사력을 동원해 직접 체포하거나 사살한 것과는 다른 접근법을 선택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앞서 미국은 지난 1월 전격적인 군사 작전을 통해 마두로 전 대통령을 체포했다. 이어 미국이 2월 28일 이란 전쟁을 시작하자 당시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폭탄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난에 허덕이는 쿠바에 대해서는 혁명을 주도한 지도자를 끌어내리려 이례적으로 사법부를 동원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날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쿠바에서 축출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하며 기자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설명해 베네수엘라, 이란과는 다른 전략을 세우고 있음을 암시했다.
대다수 쿠바 주민은 경제난으로 인한 극도의 피로감에 절망하고 있다. 현재 쿠바는 최악의 전력난과 식량 부족, 보건 의료 시스템의 붕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행 석유 공급망을 전면 차단하면서 주민들의 삶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 때문에 쿠바인 사이에서는 이 고통을 끝내줄 결정적 계기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시민은 변화를 위해 카스트로 가문과 현 집권층 전체의 완전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쿠바 내에서 민생고로 인한 시위가 잦아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규모 민중 봉기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철저한 통제 사회인 쿠바에서 정확한 여론조사를 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쿠바 독립 매체 엘 토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섬 내부 거주자의 56%, 해외 체류 쿠바인의 70%가 미국의 군사 개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마이클 부스타만테 마이애미대 교수는 "이 수치가 쿠바인들이 외세가 들어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진심으로 반긴다기보다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절박함 속에서 어디서든 도움의 손길이 오기를 바라는 상태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소와 함께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을 쿠바 앞바다인 카리브해로 보내면서 군사적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미군 남부사령부는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니미츠 항모, 구축함 그리들리(DDG-101), 보급선 퍼턱선트(T-AO 201)로 구성된 항모강습단이 카리브해에 배치됐다고 밝혔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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