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20일 취임한 지 불과 50여일 만에 전 세계가 관세 전쟁의 소용돌이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이 12일(현지시간) 전 세계를 상대로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시작하자 유럽연합(EU)은 12일(현지시간)부터 미국을 상대로 260억유로(약 41조원)어치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대응에 나섰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는 내달 2일까지 유예 후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중국은 이미 보복관세와 수출통제 수위를 올려가며 대응하고 있다. ‘시계 제로’ 환경에 내몰린 기업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기간 동안 공약했던 보편관세 구상은 포기했지만, 상호관세와 품목별 보편관세를 줄줄이 예고하며 미국 시장에 ‘관세의 장벽’을 쌓아올릴 계획이다. 철강·알루미늄은 시작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목재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구리에 대해서는 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를 상무부에 지시했다. 내달 2일에는 각국을 상대로 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EU를 상대로도 25%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했다.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는 합산 적용된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트럼프 관세가 협상용 카드일 가능성이 점쳐졌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조건부로 해제해 주는 식으로 관세를 도구화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부과를 공언했다가 국경 강화 약속을 받아낸 후 한달 유예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쉽게 면제나 유예조치를 얻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는 이날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서 기업인들과 만나 관세 정책을 발표한 후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등 투자를 늘리고 있다”면서 “그들은 25%가 되든 어떻든 관세를 내고 싶지 않아 한다”고 했다. 또 “관세는 (25%보다) 더 높을 수 있다”면서 “높을수록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을 텐데 궁극적으로 가장 큰 성과는 관세가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증시가 급락한 것에 관해서는 “한 순간의 스냅샷”이며 “과도기”라고 일축했다.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을 비롯한 기존 계약과 협정, 각종 법률상 권리는 사실상 무시되고 있다. 미국 의회 내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지만,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 의원들의 기세가 강해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은 모양새다.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관세를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관세가 일시적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을 비롯한 공화당 하원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활용하고 있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선포된 비상사태를 의회가 종료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연방정부 예산안에 포함시켰다.
일방적·즉흥적 결정이 이어지다 보니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도 내부에서 걸러지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의회 연설에서 한국의 대미 관세율이 미국 측 관세율의 네 배에 달한다고 공개 저격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사실을 잊은 것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2일 일본이 미국산 쌀에 700% 관세율을 적용한다는 자료를 보여주며 비판했지만, 이는 20년 전 데이터에 기반한 잘못된 수치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 기본 수입물량에는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빠뜨리고 왜곡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국이 반발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무조건 관세율을 더 올리겠다고 위협하는 탓에 대응도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미국으로 가는 전력에 25% 추가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하자 지난 11일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는 두 배 관세율(50%)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높은 관세를 부과해 캐나다의 자동차 산업을 “영구적으로 중단시킬 수도 있다”고 폭언을 퍼부었다. 이후 온타리오 주가 추가 세금을 보류하면서 50% 관세 계획은 다섯 시간 만에 취소됐다. 백악관은 이를 “미국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의 고무줄 관세는 기업들에게 미국 투자로 인한 기회비용을 정확히 계산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중이다. 미국 기업들조차 백악관에 관세정책의 불확실성을 줄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무역전쟁의 문제는 일단 시작되기만 하면 빠르게 확산돼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캐나다 등을 향한 무역전쟁에 대해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