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TIC) 재판부가 2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부터 캐나다·멕시코·중국을 대상으로 제기한 '펜타닐 관세'와 지난 4월 2일 '해방의 날' 발표한 상호관세의 효력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와인 등을 수입하는 VOS셀렉션스 등 중소기업 5개사와 오레곤주 등 12개 주 정부는 미국 정부와 피트 R 플로레스 세관국경보호국장,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에 참여한 3명의 판사는 각각 오바마, 레이건,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했다.
소송에 참여한 오레곤주의 댄 레이필드 법무장관은 이 판결에 대해 "노동자 가정, 중소기업, 일반 미국인에게 승리"라고 환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는 불법이고 무모하며 경제적으로 파괴적이었다"고 비판했다.
(1) 상호관세·펜타닐 관세 등 효력상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이용해서 부과된 각종 관세는 이번 조치로 일제히 효력이 중단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월 이 법에 근거해 캐나다·멕시코·중국에 펜타닐 관세를 부과했다. 이 중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는 현재 일부 유예(USMCA 적용품목에 한해 무관세 유지, 나머지는 25% 관세 적용) 중이며, 중국에 대해서는 20%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4월2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관세와 이후 중국을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율 상향(최고 125%) 조치 및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90일 유예조치, 이후 남겨진 기본관세(10%) 등도 모두 근거를 상실하게 됐다.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나 아직 특정국을 향해 부과되지는 않은 상태인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에 25%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근거를 잃었다.
(2) 어떤 논리 적용됐나-"협상카드(레버리지) 이론은 위법" 적시
재판부는 의회가 IEEPA를 제정할 때 대통령의 비상권한을 제한하려는 명시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이 과정을 다시 살펴보면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좁게'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1974년 의회가 무역법(Trade Act)를 제정하면서 122조를 포함시켰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조항은 무역적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제한적(관세 상한선 15%, 제한기간 150일)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런 점에 미루어 볼 때 의회는 무역수지 문제에 대한 관세 부과 권한을 이같이 좁은 범위로 한정했으며 IEEPA가 아니라 122조에 그 권한을 주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전 세계적 상호관세는 미국 상품무역의 대규모 및 지속적 연간적자"에 대응해 부과됐으며, 이는 122조의 제한을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제한을 따르지 않고 관세를 부과한 것은 "대통령의 권한을 초과한(ultra vires) 것"이며 위법하다고 결론지었다.
펜타닐 관세에 관해서도 IEEPA는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경우에 한해 예외적이고 비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행사될 수 있으며, 다른 목적으로는 행사될 수 없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주장처럼 이것이 정치적 판단으로 '위협'을 평가할 수 없으며 사법적으로 관리 가능한 기준이 있고 이 결정권을 대통령에게 단독으로 위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합법적인 수입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조치와 외국 정부가 마약 밀매자와 마약을 차단하지 않는 것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음을 꼬집었다.
이어 트럼프 정부는 관세가 외국 국가들이 행동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고 '레버리지'를 창출하기 때문에 허용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러한 해석을 거부한다"면서 "이런 해석은 사실상 어떠한 조치도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 조치가 비상사태와 합리적인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행정명령은 법령을 명백히 잘못 해석한 것으로, 대통령에 대한 위임 권한을 벗어난 조치라고 재판부는 결론지었다.
(3) 당장 효력 발효되나 - "10일 내 폐기" 명령
법원은 의회가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한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트럼프 대통령의 IEEPA 관련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취소되며, 그 효력은 영구히 금지된다"고 판결했다.
이론적으로는 이 판결이 확정된 시점부터 즉각 관세의 효력이 상실되어야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10일내 폐기를 명령했다.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지침이 없는 만큼, 실제로 관세 납부 의무가 언제부터 사라진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지난 2월부터 부과된 행정명령에 따라 관세를 낸 것에 대해서 환급이 가능한지도 확실하지 않다. 재판부의 판결에 관해 미국 세관당국이 향후 내놓게 될 지침을 당분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4) 협상 안해도 되나 - 부담 줄었지만 압박은 지속
한국은 지난 4월2일 상호관세로 25%를 부과받았다. 협상을 통해 일부 줄인다고 하더라도 10% 기본관세는 유지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관계자들의 일관된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번 법원 판결은 기본관세도 의회가 결정할 문제이며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일단 상호관세 및 펜타닐관세 를 이유로 협상에 나서야 하는 부담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 정부가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취소하거나 무역장벽 해소를 추구하지 않을 리는 없다. 기존 무역협정을 재검토하고,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며 압박하는 행동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로서는 앞으로 상호관세 대신 자동차 및 반도체, 철강, 의약품 관세 등에 더 초점을 맞춰 협상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5) 뒤집힐 가능성은 - 대법원까지 다투게 될 듯
트럼프 정부는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국가 비상사태에 적절히 대응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선출되지 않은 판사들의 권한이 아니다”라면서 “정부는 미국의 위대함을 회복하기 위해 행정 권한의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반응했다.
트럼프 정부가 항소할 경우 항소심은 연방순회항소법원에서 맡게 된다. 패한 쪽이 납득하지 못할 경우 사건은 최종적으로 연방대법원의 심리를 받게 된다. 항소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현재 판결의 효력이 유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관세 관련 법령을 활용해서 새로운 관세 도입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 전 검토한 주요 관세 관련 법은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법 338조, IEEPA 등이다. 무역적자 보정을 위해 15% 범위 내에서 150일씩 관세부과를 할 권리를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는 무역법 122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의 상거래에서 차별을 한 나라의 수입품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 338조도 유력한 대체후보다.
다만 어떠한 조항을 이용하든 간에 IEEPA를 이용해서 지금까지 트럼프 정부가 했던 것과 같은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관세부과를 하는 것은 모두 사법부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정부로서도 각국 정부와 실질적인 협상의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법적인 고려를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애초 IEEPA를 이용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관세부과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의회를 경유해서 정식으로 입법 절차를 거친다면 훨씬 안정적으로 관세부과의 근거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신규입법이나 기존 입법안의 수정 및 폐기를 위해서는 상원에서 최소 60표 확보가 필요하다. 상원 공화당원 수가 53명(민주당 47명)인 현 상황에서는 입법 성공을 자신하기 어렵다. 또 입법을 통한 관세부과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관세율을 적용하면서 협상 수단으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6) 다른 관세 영향은 - 자동차 반도체 관세는 유지
이번 법원 판결은 IEEPA만을 다루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품목별 관세는 이 조치에서 예외다.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자동차부품 등 이미 관세부과가 시작된 품목은 물론이고 반도체, 구리, 목재, 의약품과 같이 아직 실제 관세 부과에 이르지 않은 품목 관세도 이번 판결과 무관하다. 트럼프 정부는 상호관세 등 '국가'를 타깃으로 하는 관세부과가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경우 품목별 관세를 빌미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전략을 취할 여지가 있다.
무역법 301조나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관세 부과는 앞서 여러 차례 전례가 있는 만큼 법원에서도 새삼 제동을 걸기에는 명분이 약하다.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부터 부과되었고 바이든 정부에서도 유지됐다. 다만 각종 예외조치로 실질적인 영향력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자동차, 반도체, 목재, 구리, 의약품 등이 무역확장법 232조가 주장하는 국가안보상 중요한 품목인지에 대해서 현실적으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IEEPA처럼 대통령의 월권 논란까지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