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까지 있어야 하는 공사현장… 철근이 지시대로 박히지 않았다[히어로콘텐츠/누락③-상]

7 hours ago 3

<3-상>비용-시간에 쫓기는 건설현장

지난해 11월 히어로콘텐츠팀이 취재한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초록색 작업모를 쓴 현장 근로자 뒤로 미완성된 기둥 여러개가 보인다. 이 작업 현장에서 근무하던 철근공 10명 중 9명은 외국인이었다.

지난해 11월 히어로콘텐츠팀이 취재한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초록색 작업모를 쓴 현장 근로자 뒤로 미완성된 기둥 여러개가 보인다. 이 작업 현장에서 근무하던 철근공 10명 중 9명은 외국인이었다.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바닥, 벽, 천장 등 사방에 거미줄처럼 철근 가닥들이 시공되고 있었다.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가운데 철근을 담당하는 철근공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기자가 다가가 국적을 묻자 서툰 한국어나 짧은 영어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0명 중 9명꼴로 외국인이었다.

철근 시공을 지휘하는 한국인 ‘철근 부장’은 이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릴 때마다 멈칫하며 누군가를 불렀다. 외국인 중 조금이나마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임시 통역 담당’ 철근공이었다. 언어별로 1, 2명가량이 이런 역할을 했다. 철근 부장이 도면을 손에 들고 한국말로 지시 사항을 쏟아내면 통역 담당이 동료들에게 모국어로 옮겨 손짓하며 설명했다. 그래도 몇몇 외국인 철근공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가 직접 본 철근 시공 현장은 뭐가 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사방에 깔리고 박힌 철근마다 지름, 모양, 길이, 형태, 종류가 모두 달랐다. 설계 도면은 그보다 더 복잡했다. 관리자와 철근공 사이에 정교한 의사소통 없이는 시공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커 보였다. 철근 소장 진모 씨는 “도면은 까다로운데 소통은 안 되니 한국인과 외국인이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철근이 누락되는 등 부실이 생긴다”고 했다.

히어로팀은 지난해 11월 수도권 아파트 공사장에서 철근공 보조, 신호수, 잡부 등으로 취업해 일하며 현장을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근로자 증가가 어떻게 철근 시공 오류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히어로팀이 만난 철근공 등 건설 관계자 47명은 저마다 ‘누락’의 경험들을 털어놨다.

지난해 11월 한 아파트 건설 현장 기둥에 중국인 현장 근로자를 위한 중국어 안내문이 붙어 있다(오른쪽). 다른 공사장에도 한국어와 중국어를 병기한 ‘안전 방침’(왼쪽)이 붙어 있다.

지난해 11월 한 아파트 건설 현장 기둥에 중국인 현장 근로자를 위한 중국어 안내문이 붙어 있다(오른쪽). 다른 공사장에도 한국어와 중국어를 병기한 ‘안전 방침’(왼쪽)이 붙어 있다.
히어로팀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기간에 ‘철근 부장’과 베트남 등 외국인 철근공들이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한국인 임모 작업반장은 “철근 쪽은 요즘 대부분이 불법 체류 외국인이다. 한국인 철근공은 점점 줄고 외국인 철근공이 90%인데 말이 잘 안 통하다 보니 현장에서는 시공 오류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촉박한 공사 기한 안에 빨리빨리 아파트를 올려야 하는데 철근 공정은 복잡하다”며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 시공해야 할 철근 개수나 간격을 틀리거나,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오해하거나, 엉뚱한 철근을 박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고 말했다.

● 철근 작업 지시는 복잡한데 의사소통은 ‘버벅’

철근공 10명 중 9명 꼴 외국인
외국어 뒤섞인 현장 서로 말 안통해
“복잡한 철근 공사 작업지시 어려워”

건설 현장에 점심시간이 되면 외국인 철근공들은 같은 국적끼리 모여 밥을 먹으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곳곳에서 중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를 비롯해 분간이 어려운 외국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베트남 철근공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름이 뭔가요”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기만 했다. 스마트폰으로 번역 애플리케이션(앱)을 켜서 한국말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보여주자 그제야 자기 이름을 “풍반탕”이라고 대답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운 상황이라 복잡한 철근 시공 지시는 전달되기가 더욱 어려워 보였다.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철근공들이 철근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철근공들이 철근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외국인이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관리자나 현장소장이 애를 먹기도 한다. 형틀 소장 최모 씨는 “천장 마감 작업을 제대로 안 했길래 담당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뜯고 다시 시공하라고 지시했더니 거절해 버렸다”며 “문제를 지적하면 ‘우리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기나 하는 줄 아냐’고 나온다”고 했다. 철근 소장 신모 씨는 “떠난 외국인들이 다시 일하게 하려면 사정사정해서 돈을 올려줘야 한다”며 “우리도 내키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의 ‘세(勢)’가 커지면서 국가별 근로자 조직도 생겨났다. 과거 건설 현장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비(非)노조가 일자리를 놓고 다퉜다면 최근에는 조선족팀, 베트남팀, 동남아팀 등이 각자 뭉쳐 일자리를 얻어내기 위해 ‘국가 대항전’을 벌인다.

●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 교육 없이 바로 투입

시공 오류와 현장 갈등에도 불구하고 시공사가 외국인을 계속 쓰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이다. 한 건설 관계자는 “임금이 한국인보다 저렴하니까 시공사는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외국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히어로팀이 일한 현장에서 한국인 일당은 25만 원, 외국인 일당은 19만 원이었다. 6만 원이 저렴하다. 이 현장은 약 400명의 근로자가 작업 중이었다. 절반만 한국인 대신 외국인을 고용해도 시공사는 하루 1200만 원, 한 달에 3억6000만 원의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아파트 건설에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총 130억∼170억 원가량을 아끼는 셈이다.문제는 현장 외국인 근로자 중 상당수가 불법 체류자라는 점이다. 지난해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건설 현장의 외국인 42만2765명 중 24만2913명(57%)이 불법 체류자로 추정됐다. 히어로팀이 외국인 근로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대부분은 “내가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 인터뷰를 하기 어렵다. 발각되면 잡혀가 추방될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외국인이 정식으로 E-9(비전문 취업) 비자를 받고 한국에 오면 현장 관련 교육을 3∼5일 정도 받는다. 최소한의 사전 지식을 습득하는 셈이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는 이런 교육을 안 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말은 잘 안 통하는데 철근 시공법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 공사 기한 압박도 문제… 철근 안 묶고 매립

기한 압박에 “철근 한두개 빠져도 뭐”
철근 고정 결속선 안묶는 경우 허다
지연비용 시공사 떠안아 대충대충
“콘크리트 치면 진실도 묻히는거죠”

히어로팀이 만난 한국인 철근공 이민형(가명) 씨는 외국인에게 ‘몸값’이 밀려 지난해부터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4년간 철근공으로 일하면서 설계보다 훨씬 얇은 철근을 깐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철근 반장은 지름 22∼25mm 바닥(슬래브) 철근이 들어갈 자리에 10mm대 철근을 넣으라고 지시했다. 철근이 두껍고 무거우면 비싸고, 가늘고 가벼우면 싸다. 이 씨는 “소시지 같은 철근을 넣어야 하는데 이쑤시개를 깐 거죠.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생계가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 증가 외에도 철근 부실시공을 초래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이 씨는 ‘공기(공사 기한) 압박’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특히 철근과 철근을 고정시키는 ‘결속선’을 안 묶는 경우가 현장에선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결속선은 콘크리트를 부었을 때 철근이 휘거나 이탈하는 것을 막아주는데 이를 묶지 않는 것이다. 이 씨는 “10곳을 묶어야 하면 그중 1곳만 묶고 끝낸다”며 “하루에 정해진 할당량이 있으니 일일이 묶다 보면 기한 내 일을 못 마친다”고 말했다. 결속선이 없는 철근은 덜렁덜렁 흔들린다. 이 씨는 “저는 건설 현장 내막을 알잖아요. 아무리 싸게 나와도 제가 지은 아파트엔 솔직히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경기 지역 한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지하 주차장 기둥 주변 바닥에 발생한 구멍 사이로 지하수가 솟구치고 있다. 이 구멍은 방수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생겼다.

지난해 1월 경기 지역 한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지하 주차장 기둥 주변 바닥에 발생한 구멍 사이로 지하수가 솟구치고 있다. 이 구멍은 방수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생겼다.

2023년도 말 경기 지역 한 신축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천장 부근에 7~8mm 폭의 균열이 발생했다. 건축 구조 기술사 진단 결과 건축물 안전등급 기준상 D~E 등급으로 즉각 사용 금지 및 재시공이 필요한 상태다.

2023년도 말 경기 지역 한 신축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천장 부근에 7~8mm 폭의 균열이 발생했다. 건축 구조 기술사 진단 결과 건축물 안전등급 기준상 D~E 등급으로 즉각 사용 금지 및 재시공이 필요한 상태다.
히어로팀이 취재한 건설 현장 역시 공기를 맞추기 위해 폭우나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도 야외 공사를 강행했다. 한 날은 오전 작업이 늦어지자 하청업체 반장이 팀장과 심각한 얼굴로 상의하며 “오후 3시에 콘크리트 타설 감리 검사가 있는데 진행 속도가 나지 않아 큰일인데요”라며 안절부절못했다. 이날 콘크리트 타설 검사를 못 하면 전체 공정이 하루씩 밀린다는 설명이었다.

콘크리트는 빗물이 섞이거나 매우 추운 날 작업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콘크리트가 굳기도 전에 추위 탓에 얼었다가 기온이 올라간 뒤 녹는 현상을 ‘동결융해(凍結融解)’라고 한다. 콘크리트 속 수분이 얼면 그 부피가 9%가량 팽창한다. 이 얼음이 녹으면 콘크리트는 골다공증 환자의 뼈처럼 약해진다.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건설사, 시공사는 공기를 맞추려 공사를 강행한다. 수분양자들의 입주가 늦어지면 지연 비용은 고스란히 시공사 몫이기 때문이다. 철근공 김모 씨는 “위에서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해 빨리빨리 하라고 압박한다”며 “‘철근 한두 개쯤이야 빠져도 괜찮겠지’ 하고 넘어가게 된다”고 했다. “월급쟁이 입장에서 뭘 어쩌겠어요.”

● 부실 철근은 시멘트로 덮어… “저 말곤 몰라요”

2023년 11월 충청 지역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국토교통부 점검 며칠을 앞두고 한 작업자가 튀어나온 철근을 시멘트로 덮고 있다.(오른쪽 사진) 튀어나온 철근(왼쪽 사진 빨간색 동그라미)은 심각하게 휘어 벽체를 제대로 지탱할 수 없는 상태다.

2023년 11월 충청 지역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국토교통부 점검 며칠을 앞두고 한 작업자가 튀어나온 철근을 시멘트로 덮고 있다.(오른쪽 사진) 튀어나온 철근(왼쪽 사진 빨간색 동그라미)은 심각하게 휘어 벽체를 제대로 지탱할 수 없는 상태다.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부실시공하는 것을 넘어, 다 지은 아파트의 부실을 감추기도 한다.

30년 차 방수 기능공 김용학 씨는 2023년 11월 충청 지역의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밖으로 돌출돼 심하게 휘어 있는 철근 더미를 한 작업자가 시멘트로 덮어 버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당시는 국토교통부가 현장 점검을 나오기 3일 전이었다. 이를 미리 전해 들은 건설사는 문제 부분을 재시공하는 대신에 시멘트로 덮어 버렸다. 김 씨는 히어로팀에 “부실시공의 ‘마지막 증거’를 몰래 사진으로 남겨 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보강 공사 없이 시멘트로 덮은 철근은 나중에 부식돼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번지르르한 겉모습만 보고 좋은 아파트라고 생각하면서 비싼 돈을 대출까지 끌어 지불해요. 하지만 이런 감춰진 부실이 있다는 건 저나 작업자 말고는 알 수 없죠. 공구리(콘크리트) 치면 결국 ‘진실’도 같이 묻혀 버리는 거니까요.”

〈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

[①-상] 철근 8개 있어야할 기둥, 실제론 4개밖에 없었다
[①-하] 국토부 “문제없다” 덮었는데, 보고서엔 11곳 ‘철근-콘크리트 부실’
[②-상] 철근 누락 알리자, 지자체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
[②-하] 철근 절반 빠진 20층 건물, 지진 7초만에 S자로 휘며 바로 붕괴
[③-상] 통역까지 있어야 하는 공사현장… 철근이 지시대로 박히지 않았다
[③-하] “남는 것 거의 없는 4차 하청… 금 간 기둥 알면서도 썼다”

※4회 기사는 27일 오전 3시 온라인에 공개됩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https://original.donga.com/2025/APT)로 연결됩니다.

▽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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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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