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것 거의 없는 4차 하청… 금 간 기둥 알면서도 썼다”[히어로콘텐츠/누락③-하]

7 hours ago 3

<3-하>‘19시간, 320건’ 4차 하청업체 통화 들어보니

8일 경기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건설소장 정민호(가명) 씨가 철근콘크리트 구조 기둥 안에 설치될 철근을 작업하고 있다.

8일 경기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건설소장 정민호(가명) 씨가 철근콘크리트 구조 기둥 안에 설치될 철근을 작업하고 있다.


“모르는 척 균열이 있는 기둥을 그냥 박았습니다.”

지난해 11월 아파트 건설소장인 정민호(가명) 씨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만난 자리에서 울먹였다. 침묵 뒤에 나온 고백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9월 말이었다.

정 씨는 자신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균열이 간 기둥을 그냥 설치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원래대로라면 품질 문제가 있는 기둥은 돌려보내고 정상 기둥을 설치해야 하는 게 맞다”며 “그런데 원청에서 약속과 달리 돈을 다 떼어 가고 모른 척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미 제 돈으로 적자 메워 일하고 있었다”며 “올바른 기둥을 다시 받아서 설치하려면 손해가 너무 막심하니까 그럴 여력이 안 됐다”고 했다.

불법 하도급 문제는 우리나라 건설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고질병으로 꼽힌다. 실제 투입되는 공사비가 줄어들면서 부실 공사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그 핵심에 불법 하도급 업체들이 있다. 히어로팀은 4차 불법 하도급사 직원이었던 정 씨와 서른네 번의 통화, 세 번의 대면 인터뷰를 거쳤다. 정 씨가 대기업 건설사부터 1차, 2차, 3차 하도급사들과 나눈 320건, 총 18시간 44분 분량의 통화 녹음을 모두 살펴봤다. 거기에는 불법 하도급이 초래한 아파트 부실 공사의 실체가 담겨 있었다.

● 재하청도 불법인데 ‘4차 재하청’까지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불법
구두 계약에 공사대금 못받기 일쑤
1, 2, 3차 업체서 수수료 떼가면
발주액의 30% 쥐꼬리 공사비 남아
“불량 자재 돌려보내는 게 맞지만
기둥 운송비-추가 인건비 부담
적자 보며 공사… 부실유혹 빠져”

정 씨는 건설업 경력 30년 차 베테랑이다. 현재 경기 지역 모 아파트 건설 현장의 기둥 설치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회사는 대기업 건설사에서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받은 불법 하도급 업체다.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원칙적으로 ‘하청의 하청’, 즉 재하청(재하도급)은 위법이다. 그런데 그의 업체는 재하청도 아닌 네 번째 하청 업체였다.

지난해 3월 정 씨는 한 건설업체 대표에게서 “아파트 기둥을 설치하고 3억70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해 보지 않겠냐”란 제안을 받았다. 건설업계가 불황인 데다 설치 공법도 어렵지 않아 일을 받았다.

불법 하도급이었기 때문에 서면 계약서는 없었고, 모두 구두 계약으로 이뤄졌다. 물론 정 씨도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일하고 싶었지만 ‘계약서를 쓰자’고 말하는 순간 “너 말고 할 사람은 많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거리가 사라진다.

8일 경기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작업중인 정 씨.

8일 경기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작업중인 정 씨.
정 씨 회사의 하도급 관계는 이러했다. 대기업 원청 종합건설업체 A사는 전문건설업체에 1차 하청을 맡겼다. 1차 업체는 2차 업체에, 2차 업체는 3차 업체에 맡겼다. 3차 업체는 정 씨 업체(4차 불법 하도급 업체)에 일을 줬다. 결국 일은 정 씨 회사가 하는데 앞의 업체들은 일을 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떼어 간다.

건설 현장에서는 정 씨를 ‘3차 업체’로 알고 있었다. 정 씨에게 일을 준 3차 업체 대표가 다른 업체에 재하청 사실을 알리지 않고 몰래 일을 줬기 때문이다. 3차 업체 대표는 정 씨와의 통화에서 “내가 하도급 줬다는 얘기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정 씨도 익숙했다. “하루이틀 하나요. 걱정 마세요.”

현장 출근 첫날,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사전에 구두로 계약한 기둥이 아닌 다른 시공 방식의 기둥을 설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설치가 훨씬 까다롭고 설치 비용도 1.5배가량 더 드는 방식이었다. “시공법이 다른 기둥인데 어떻게 된 겁니까.” 정 씨가 따졌다. “아, 그래? 잘못 알았나 보네.” 3차 업체 대표의 대답은 그뿐이었다. 이대로 공사를 맡으면 정 씨 회사가 오히려 손해를 볼 상황이었다. 정 씨는 “업계가 워낙 좁아 신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일을 하려면 ‘못 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추가 인건비 등 5000만 원가량을 손해 볼 상황이었지만 3차 업체는 달랑 1000만 원만 보전해 줬다.

● 내려갈수록 공사비 줄어… 하자 있어도 방치정 씨는 일을 시작한 지난해 3월 초부터 5월까지 약 두 달 치의 ‘기성’(결제대금)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3차 업체는 기존에 없던 청구서를 내밀었다. 지난해 1, 2월 정 씨가 일을 맡기 이전에 다른 업체가 사용한 중장비 대여료 1800만 원을 정 씨에게 줄 돈에서 공제한다는 것이었다.

정 씨는 참다 못해 2차, 3차 업체와 통화를 했다. “내가 일하기 전 다른 업체가 사용한 중장비 대여료를 왜 내가 내야 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두 업체의 공통된 대답은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1차 업체에도 연락했지만 “우리는 3차 업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이번 일로 공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순간에 다른 업체의 중장비 대여료를 ‘꼬리’인 정 씨가 떠안았다.

지난해 9월 정 씨가 원자재 거래처로부터 받은 내용증명서. 3차 하도급업체로부터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정 씨는 4개월 간 2300만 원 상당의 자재비를 거래처에 납입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정 씨가 원자재 거래처로부터 받은 내용증명서. 3차 하도급업체로부터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정 씨는 4개월 간 2300만 원 상당의 자재비를 거래처에 납입하지 못했다.
그는 2024년 3월부터 지금까지 일한 돈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시공비, 인건비 등 받아야 할 돈만 7000여만 원인데 그중 5000만 원가량을 못 받았다. 3차 업체는 지난해 5월부터 지급을 미루고 있다. 전화 통화에서 3차 업체는 정 씨에게 “2차 업체가 돈을 안 주니 우리도 못 주는 거다. 2차도 돈이 없나 봐. 나도 집 내놨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2차 업체로 전화했다. 그러자 2차 업체는 “우리는 3차 업체에 돈을 지급했다. 3차는 소장님한테 돈 줬다고 하던데?”라고 했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대금을 못 받은 지 8개월째. 당장 협력업체에 줘야 할 대금 결제가 위태로웠다. 이미 정 씨 앞으로 날아온 내용증명도 한가득이었다.

현장에서 공사를 직접 진행하는 정 씨에게 돈이 없으면 이는 자연스레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균열이 간 기둥 등 문제가 있는 요소를 확인하고 바로잡으려면 비용이 드는데, 그러려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결국 금이 간 기둥은 그대로 아파트에 설치됐다. 겉에 칠을 하고 외장재를 덮으면 수분양자는 기둥에 금이 갔는지, 하자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 “말단 업체는 공사비의 30%만 가지고 시공”

히어로팀은 ‘4차 하청’ 정 씨의 사례에서 계약서 미작성, 공사 대금 미지급 등 불법 하도급에서 비롯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위험은 이런 불법 하도급이 부실시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 씨도 “공사 대금을 주지 않아 기둥 운송비와 추가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며 “문제가 있는 기둥도 돌려보내지 못하고 그냥 설치한 것”이라고 고백한 이유다.

취재 결과 2차, 3차, 4차 업체는 모두 불법 하도급에 해당했다. 대형 건설사가 전문건설업체(1차)에 기둥 설치 공사를 맡겼는데 허락 없이 2차, 3차, 4차까지 일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건설산업기본법상 발주처 동의 없이 재하도급을 하거나, 하청 받은 공사 전체를 재하도급하면 불법이다.

2차, 3차 업체는 현장에서 직접 공사를 하지 않고 일정 부분의 공사 대금만 수수료로 챙겼다. 실제 공사를 맡는 마지막 업체를 제외한 중간 업체들이 일을 넘기고 돈은 받는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한 셈이다. 건설 현장의 불법 하도급 업체는 전국에 1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5월부터 8월까지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불법 하도급 집중 단속 결과 현장 508곳 중 35.2%(179곳)에서 불법 하도급 업체가 적발됐다. 건설 현장 10곳 중 4곳은 불법 하도급 업체가 시공 중인 셈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하도급까지 포함하면 훨씬 높은 비율로 불법 하도급이 현장에 만연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법인 공정 황보윤 변호사는 “최종 하도급사에는 발주 금액의 극히 일부만 떨어지니 공사 비용을 맞추려 부실 공사 가능성이 커진다”며 “심지어 발주 금액의 30% 정도만 갖고 최하단 업체가 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

[①-상] 철근 8개 있어야할 기둥, 실제론 4개밖에 없었다
[①-하] 국토부 “문제없다” 덮었는데, 보고서엔 11곳 ‘철근-콘크리트 부실’
[②-상] 철근 누락 알리자, 지자체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
[②-하] 철근 절반 빠진 20층 건물, 지진 7초만에 S자로 휘며 바로 붕괴
[③-상] 통역까지 있어야 하는 공사현장… 철근이 지시대로 박히지 않았다
[③-하] “남는 것 거의 없는 4차 하청… 금 간 기둥 알면서도 썼다”

※4회 기사는 27일 오전 3시 온라인에 공개됩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https://original.donga.com/2025/APT)로 연결됩니다.

▽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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