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20년 뒤에도 쿠팡·토스를 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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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20년 뒤에도 쿠팡·토스를 쓰고 있을까

2014년 어느 날이었다. ‘창업 4년차 스타트업’ 쿠팡의 창업자인 김범석 대표(현 이사회 의장)와의 인터뷰. 사실 당시의 쿠팡은 ‘연예인 광고 퍼붓는다’ ‘싸게 판다’ 말고는 이렇다 할 차별점이 드러나지 않는 쇼핑몰이었다. 으레 던져본 사업 계획 질문에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뗐다.

“새로운 걸 하나 해보려는데요. 주문하면 바로 다음날 아침까지 저희 직원이 문 앞에 가져다드리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직원이 급제동을 걸었다. “그건 말하시면 안 돼요!” 무슨 야심작이기에 저러나 싶어 어리둥절했지만, 감당이 되겠나 싶기도 해서 더 묻지 않았다. 업계에서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회사’로 불렸기 때문이다. 그게 대한민국 유통 판을 뒤집어놓은 ‘로켓배송’인 건 나중에 알았다. 직매입, 물류망, 자동화를 무기로 한 대변신을 내부적으론 착착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토요칼럼] 20년 뒤에도 쿠팡·토스를 쓰고 있을까

그날 김 대표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랬다. “e커머스가 포화상태라고들 하지만 PC로 치면 아직 286 수준이에요. 차별화 포인트를 잘 찾으면 차지할 시장은 무궁무진합니다. 꼭 판을 바꿀 겁니다.” 허언이 아닌 현실이 됐다.

내일은 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한 지 딱 29년 되는 날이다. 1호 타이틀은 롯데인터넷백화점이 갖고 있다. 1996년 6월 1일 문을 연 이곳은 당시로선 ‘혁신’이었다. 하지만 롯데의 아픈 손가락이 된 지 오래다. 올해 1분기 롯데온 매출은 283억원, 쿠팡 매출은 11조4876억원.

사람으로 치면 갓난아기가 서른을 바라볼 만큼의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롯데는 왜 허망하게 실기했을까. e커머스의 성장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아니고 너무 크고 굼떠서였다. 롯데는 백화점, 마트, 슈퍼, 홈쇼핑, 롭스, 하이마트에다 e커머스 전문 계열사인 롯데닷컴까지 ‘7형제’가 온라인몰을 따로 운영했다. 경영인마다 각자 성과를 의식하느라 협업에 소극적인, 콩가루 냄새가 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복잡한 교통정리 과정을 거쳐 롯데온이라는 통합 쇼핑몰이 만들어진 건 2020년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와우 경험’이라고 표현하는,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디테일에서는 여전히 부족했다. 손가락 한 번만 밀면 주문과 결제가 모두 끝나고, 냉장고에 떨어진 먹거리를 귀신같이 알아내 들이밀고, 반품을 신청하면 곧바로 환불해주는 류의 작은 경험들. 벤처 출신은 잽싸게 해내는 일이 ‘유통 공룡’에겐 버거워 보였다.

“어디까지 잘되나 보자” 소리를 듣던 작은 회사가 고인물들에게 보기 좋게 일격을 가한 사례는 더 있다. 쿠팡과 마찬가지로 2010년 전후 등장한 고참 스타트업이 주인공이다. 요즘 증권사들은 20~30대 손님을 빼가는 토스증권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토스의 인기 비결은 단순하다. 귀찮은 보안 앱 설치 없고, 화면이 쉽고 깔끔하고, 커뮤니티가 활성화돼 재밌다는 것이다. 예전에 이승건 대표에게 “대형 금융회사들은 단일 앱에 모든 서비스를 집어넣는 게 기술적으로 어렵다고들 하던데 안 힘드냐”고 물었더니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아뇨? 하면 되는데요?”

패스트패션(SPA) 시장에선 무신사의 기세가 매섭다. 무신사스탠다드 매장에 외국인이 바글바글한데, 깔끔하고 쿨한 한국 스타일이 좋아서라고 한다. 천하의 제일모직도 포기했던 ‘유니클로 대항마’ 자리를 조만간 움켜쥘 기세로 확장 중이다. 증권업이나 의류업이나 “이 시장은 포화상태”라던 업계 터줏대감이 참 많았는데, 머쓱하게 됐다.

이달 들어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인터넷 서비스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는 뉴스가 유독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를 22년 만에 접었고, 네이버는 어린이판 국민 포털이던 ‘쥬니어 네이버’를 26년 만에 닫았다. 카카오는 다음을 분사하면서 사업 축소와 매각을 예고했다. 그런 기사를 쭉 접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20년 뒤에도 쿠팡과 토스를 쓰고 있을까?’

항상 필사적으로 판을 뒤집어 온 기업들이니 호락호락하게 뒤처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쿠팡이 롯데를 깬 것처럼 쿠팡에 균열을 내는 신성이 등장할 날을 상상해 본다. 스타트업의 춘추전국시대이던 2010년대와 달리 요즘은 당장 딱 떠오르는 차세대 스타가 없는 게 좀 걱정이긴 하다. 그런 뉴페이스들이 나타날 토양을 얼마나 잘 닦아놓느냐도 우리 미래를 좌우할 조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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