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모든 빛을 압도한다…빛이 없다면 공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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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는 제조업과 패션, 디자인을 선도하는 이탈리아의 문화·예술·경제 도시다. 매년 4월은 디자인과 관련한 전시와 쇼룸이 활짝 열린다. 그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행사는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 1961년 이탈리아 목재가구협회 후원으로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를 개최한 게 행사의 시작이었다. 오는 4월 8일부터 13일까지 열릴 살로네 델 모빌레를 찾는 ‘빛의 대가’ 2명을 서면으로 미리 만났다. 멘데 가오루 (75)는 건축 조명 디자인 그룹 LPA(Lighting Planners Associates)를 이끌고 있다. 로버트 윌슨(84)은 60년간 공연예술계에서 빛을 활용한 독보적 연출을 자랑해온 거장이다.

건축 조명 디자인 거장 멘데 가오루
조명은 과학·기술…인문학적 과정 거쳐야 창의적 설계 작품으로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적용된 멘데 가오루의 조명 디자인. /LPA 제공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적용된 멘데 가오루의 조명 디자인. /LPA 제공

일본 출신의 도시 조명 대가 멘데 가오루는 살로네 델 모빌레에서 조명 트렌드를 짚어주는 한편 자신이 가진 조명 철학을 전파할 예정이다. 멘데는 조명을 쓸 때 도시 경관을 하나의 상품으로 접근한다. 건축, 도시, 조경, 전기설비, 물리학과 생리학 등의 이공학적 지식뿐 아니라 심리학, 미학 등 인문학적 융합이 불가결하단 게 평소 그의 생각. 멘데는 “조명은 과학이고 기술이며, 인문학적 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에는 예술로 표현되는 창의적인 설계 작품”이라고 했다. 그가 일본 도쿄역 마루노우치 빌딩, 센다이 미디어테크,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등의 조명을 설계했다.

멘데 가오루. /살로네 델 모빌레 제공

멘데 가오루. /살로네 델 모빌레 제공

건축 조명의 마술사로 불리는 멘데지만, 그는 태양이 모든 빛을 압도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태양의 빛에서 모든 걸 배워야 합니다. 조명의 기원은 태양과 불이기 때문이죠. 자연광의 특성을 극대화하면서 기술을 활용하는 게 조명 설계에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조명의 디자인 과정은 단순히 밝혀야 하는 장소나 특정 조명기구를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에 국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람의 보행 속도와 눈동자의 움직임, 밝은 영역과 어두운 영역의 조화(빛과 그림자의 균형), 안전뿐 아니라 기억에 남을 만한 풍경을 만드는 것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조명을 설계해야 하죠. 기능적인 빛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특정 공간에서 빛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한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건축 조명 디자이너에게)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조명 디자인은 여전히 건설사가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멘데 역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건설사가 조명 디자인을 주도하도록 두기보다는 빛 전문가 의견과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해 도시와 공간 개발 차원에서 조명을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래 조명과 관련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도시 조명의 현황을 점검하는 일이 불가결하다는 것. “건물에 조명을 설치하는 일은 디자인의 시작점인 ‘콘셉트 디자인’과 디자인의 목표이자 최종점을 모두 의식한 조명 계획이 필수적입니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영감을 조명으로 실현하는 것에 매몰되지 말고 지속 가능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둬야 좋은 조명이 탄생하죠.”

멘데는 올해 살로네 델 모빌레 조명 포럼 ‘유로루스’에도 참여한다. 그는 LED(발광다이오드)를 비롯해 새로운 광원 개발로 조명 기구가 점점 더 소형화되고 있다는 점, 적은 전력으로도 높은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는 트렌드와 함께 조명 제어 기술 등 시스템을 다루는 기술을 다룰 예정이다.

그는 조명 디자인은 단순히 고급화를 위해 예산을 쓰는 분야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을 위한 보다 편안한 조명 환경을 만들고, 지구 환경을 위해 빛 공해를 줄이는 동시에 에너지 효율을 생각해야 합니다. 조명 디자인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무대 위 빛의 연금술사 로버트 윌슨
빛은 무대 위의 시작점…세트와 소품 없어도 그림자만으로 이야기

고대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2017년 초연된 오페라 ‘에다(EDDA)’의 무대. 로버트 윌슨이 연출을 담당했다. /ⓒ레슬리 레슬리-스핑크스

고대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2017년 초연된 오페라 ‘에다(EDDA)’의 무대. 로버트 윌슨이 연출을 담당했다. /ⓒ레슬리 레슬리-스핑크스

로버트 윌슨은 음악과 춤, 장식을 결합한 퍼포먼스 예술가이자 연극, 오페라 무대 연출가다. ‘해변의 아인슈타인’(1976)이라는 오페라는 그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린 대작이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일대기를 이미지와 음악, 간결한 수학적 텍스트만으로 표현했기 때문. 이미지와 음악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명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의 이름은 이제 공연계에서 하나의 장르가 됐다.

로버트 윌슨. Lucie Jansch /살로네 델 모빌레 제공

로버트 윌슨. Lucie Jansch /살로네 델 모빌레 제공

“아인슈타인이 얘기했듯, ‘빛은 모든 것의 척도’입니다. 빛이 없다면 공간도 없습니다. 빛은 무대 위 시작점인 공간을 만들고 점차 극을 발전시키죠. 저는 빛을 무대 연출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난해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방한해 선보인 1인극 ‘메리 스튜어트’도 윌슨의 연출이 빛나는 작품이었다. 강렬한 조명과 대비되는 그림자, 세트도 소품도 없는 무대가 창백한 빛으로 채워지면서 위페르의 독백이 감각적으로 전해진 바 있다. 윌슨은 가구 중 ‘의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졌기에 의자와 관련한 디자인 전시도 여러 번 열었다. “예전부터 의자는 내 눈에 조각품처럼 보였다”는 그는 올해 살로네 델 모빌레에서 빛, 소리, 물질로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오는 4월 7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는 윌슨이 기획한 첫 행사 ‘The Night Before-Objects, Chairs, Opera’가 열린다. 윌슨은 “디자인, 오페라, 가벼운 건축을 융합해 ‘빛’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무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전했다.

무대 조명에 대한 남다른 감각 덕분에 살로네 델 모빌레에 초청된 윌슨은 4월 8일부터 5월 18일까지 신작도 공개한다. 스포르체스코성에서 전시될 그의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조각품 ‘피에타 론다니니’를 재해석한 ‘마더’로 이름 붙였다. 윌슨은 “빛과 소리(아르보 패르트의 중세풍 기도곡인 ‘스타바트 마터’)를 혼합했다”며 “경외심과 경이로 이뤄진 미켈란젤로의 걸작에 대해 나만의 비전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저는 작품을 통해 단일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엔 관심이 없어요. 대중이 작품을 보고 각자 자유롭게 느꼈으면 하고, 그 감상을 소통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보편적인 이미지, 우리 내면의 뭔가를 움직이는 영적 경험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조각품 위로 향하는 조명은 긴장감을 빚어내고, 마치 관람객에게 최면을 거는 듯한 분위기로 꾸며질 것이라고. 그는 이번 박람회에서 관람객과 직접 만나는 유로루스 마스터 클래스 워크숍(4월 10일)도 연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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