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왕좌의 귀환인가, 붕괴 전 이상 징후인가.’
지난 26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30일 폐막한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홍콩 2025’을 두고 미술계가 던진 질문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전 세계 미술 시장이 불황의 터널을 지나는 가운데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참여 갤러리와 매출 등 수치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정점에 비하면 여전히 거래액은 낮은 편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은 회복했다는 분위기다. 지난해에 이어 42개국 240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VIP 프리뷰 개막 당일 메가 갤러리들도 몇 시간 만에 잇달아 대작들을 판매했다. 반면 미·중 무역 분쟁과 홍콩의 중국화 기조 등 국제 정세, 글로벌 미술 시장의 흐름을 감안하면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같은 기간 열린 세계 양대 경매사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이브닝 세일에서는 바스키아, 르누아르 등 명작이 추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됐지만 전체 판매 수익은 6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메가 갤러리의 블루칩은 ‘완판’
아트바젤 홍콩은 2008년 ‘아트HK’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13년부터 ‘아트바젤 홍콩’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매년 전 세계 컬렉터 8만여 명이 방문해 연간 거래 규모만 1조원을 넘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동안 규모가 줄었지만 지난해 예년 규모를 회복했다.
메가 갤러리들은 VIP 프리뷰 첫날 몇 시간 만에 놀랄 만한 판매 실적을 보고했다. 올해 하이라이트는 하우저앤드워스를 통해 750만달러(약 110억 3000만원)에 판매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Coisy Two’(1995)였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금속 감옥 안에 담은 조각 작품으로, 현존하는 40여 점의 비슷한 작품 중 개인 소장품은 거의 없다. 대부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이 소장 중이다. 이 갤러리는 부르주아의 ‘COVE’를 한국인 컬렉터에게 200만달러에, 최근 전속 계약한 이불 작가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각각 26만달러, 27만달러에 팔았다.
데이비드 즈워너는 구사마 야요이의 회화 ‘인피니티 넷’을 350만달러에, 엘리자베스 페이턴과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을 각각 90만달러에 판매했다. 타데우스 로팍은 첫 이틀 동안 540만달러 이상의 판매액을 올렸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아트페어의 단골 블루칩들이 130만~150만달러 사이에 팔렸다. 가고시안 역시 사라 체, 쩡판츠, 캐럴 보브, 무라카미 다카시 등 블루칩 작가의 작품을 모두 판매했고, 글래드스톤은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 및 회화 시리즈 10점 이상과 아니카 이의 설치 작품(22만5000달러) 등을 첫날 모두 팔았다.
◇중국 본토 20~30대가 뉴 컬렉터로
페어장에는 광둥어 대신 만다린어를 쓰는 중국 본토 컬렉터들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트페어 기간 동안 M+ 등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선 중국 작가와 디자이너를 대대적으로 알리는 전시와 행사가 이어졌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호텔, 쇼핑몰, 갤러리와 미술관이 다채로운 행사를 벌이던 이전과 달리 ‘그들만의 축제’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홍콩 부동산의 위기, 외국계 기업의 탈출 러시 등 수면 아래 잠재적인 위협 요인이 많지만 미술 시장만 두고 보면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베이징에 진출해 있는 갤러리 우르스 마일은 중국 작가 주팅의 대형 아크릴 작품 3점을 아시아 손님에게 4만5000~4만8000달러에 판매했다. 갤러리 측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구매자는 상당수 사라지고, 콘텐츠에 관심 있는 20~30대 중국 신흥 컬렉터가 새롭게 떠오른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미·중 무역 분쟁 상황을 반영한 탓인지 미국 컬렉터와 갤러리의 참여는 현저히 줄었다. 에드워드 타일러 나헴, 헬리 나흐마드 등 포스트 모던 블루칩 작품을 판매하던 미국 갤러리들은 올해 불참했다. 클라우디아 알베르티니 마시모 데 카를로 수석디렉터는 “아시아 신흥 컬렉터들은 아직 신중한 태도이지만 장기적으로 세대 교체 시기가 온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홍콩=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