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레전드’ 김택수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은 OOO”[이헌재의 인생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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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게 유승민에게 먼저 안겼던 김택수 코치는 곧바로 자세를 바꿔 유승민을 안아주고 있다. 동아일보 DB

의도치 않게 유승민에게 먼저 안겼던 김택수 코치는 곧바로 자세를 바꿔 유승민을 안아주고 있다. 동아일보 DB

지난달 새 진천선수촌장에 임명된 ‘탁구 레전드’ 김택수(55)는 선수 시절 ‘악바리’로 유명했다. 국가대표 선수라면 누구든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그는 유독 의지가 강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 자신을 봐도 의지와 집념이 강한 편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김택수 코치가 금메달을 딴 유승민에게 안기고 있다. 코치가 선수에게 먼저 안겨 논란이 됐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아일보 DB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김택수 코치가 금메달을 딴 유승민에게 안기고 있다. 코치가 선수에게 먼저 안겨 논란이 됐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아일보 DB
그가 처음 탁구 라켓을 잡은 건 남들보다 다소 늦은 초등학교 5학년 특별활동 시간이었다.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지만 소년체전에 출전하면서 탁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동료들에 비해 2, 3년이 늦게 탁구를 시작한 그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광주 무진중에 진학하면서 국가대표라는 더 큰 목표가 생겼다. 중학교 선배이자 당대 최고의 탁구 스타였던 김완 감독이 가끔 학교를 찾아 탁구를 쳐 주곤 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목표를 향해 모든 걸 쏟아부었다. 남들보다 30분 먼저 훈련을 시작했고, 30분 늦게 연습장을 나왔다. 김택수는 “너무 힘들었지만 참고 견뎠다. 잘 때는 머리맡에 안약을 두고 잤다”며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고 잠들면 아침에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어렵게나마 눈을 뜨기 위해 안약을 눈에 넣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선수-코치에서 2025년 대한체육회장과 선수촌장이 된 유승민(왼쪽)과 김택수. 대한체육회 제공

2004 아테네 올림픽 선수-코치에서 2025년 대한체육회장과 선수촌장이 된 유승민(왼쪽)과 김택수. 대한체육회 제공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탁구를 시작한 지 5년 만인 중학교 3학년 때 그는 전국대회에서 1등을 했다. 고교 1학년 때 청소년 대표가 됐고, 고2 때 마침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그가 진정 대단한 것은 태극마크를 단 이후의 일이다. 그는 처음 국가대표가 된 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은퇴할 때까지 17년간 한 번도 태극마크를 놓친 적이 없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요람이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충북 진천선수촌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선수촌의 터줏대감이었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전에 은퇴하면서 지도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실력으로만 보면 그는 3, 4년은 충분히 더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게 탁구계의 평가다.

당시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유승민과 오상은 등 두 명이 이미 결정된 가운데 김택수는 마지막 한 장의 티켓을 따냈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 순간 덜컥 자신의 출전권을 후배에게 양보했다. 김택수는 “생애 마지막 올림픽 출전권을 양보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나보다는 후배들의 메달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며 “돌이켜보면 무모했던 건지, 순수했던 건지 모르겠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탁구계에 헌신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느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 때 신유빈과 김택수.  김택수 제공

지난해 파리 올림픽 때 신유빈과 김택수. 김택수 제공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남자 단식과 복식에서 2개의 동메달을 땄다. 비록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그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어 본 몇 안 되는 선수다.

그의 탁구 인생 하이라이트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중국 탁구는 감히 넘보기 힘든 철옹성과 같았다. 그런데 김택수는 남자 단식 4강에서 세계랭킹 3위인 중국의 쿵링후이를 이겼다. 그리고 결승에서 또 다른 중국 선수 류궈량까지 꺾었다. 그 경기에서 나온 32구 랠리는 지금 봐도 가슴 떨리는 명장면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만리장성을 넘는 모습을 현지에선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택수는 “중국은 그 대회에서 앞서 열린 6개 종목을 모두 휩쓸었다. 더구나 중국 선수가 두 명이나 4강에 올라와 있었다”라며 “당시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건 야구 대표팀이었다. 박찬호와 김병현 등 일명 드림팀이 처음 구성됐기 때문이다. 현지에 온 기자들 대부분이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 내가 금메달을 딴 것을 뒤늦게 알고 달려왔던 기억이 난다”라며 웃었다.

김택수와 여자 탁구 레전드 현정화의 모습. 김택수 제공

김택수와 여자 탁구 레전드 현정화의 모습. 김택수 제공

올림픽 금메달을 꿈을 이뤄준 것은 제자인 유승민(43·현 대한체육회장)이었다. 선수 은퇴 후 곧바로 유승민을 지도한 김택수는 중국 선수들을 대비해 맹훈련을 시켰다. 유승민은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유일한 선수였다. 김택수는 “나도 집념과 의지가 강한 편이다. 그런데 유승민 회장은 모든 면에서 나를 넘어선 선수였다”며 “왕하오의 이면타법을 대비하기 위해 하루 1만 개의 공을 받도록 했다. 모든 선수들이 나가떨어질 때 유 회장만 버텨냈다. 남다른 집념과 체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승민은 결국 남자 단신 결승에서 만난 왕하오를 꺾고 한국 남자 선수로는 올림픽 단신 결승에서 유일하게 중국 선수를 이긴 선수가 됐다.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유승민이 마지막 점수를 뽑고 우승을 확정한 순간 예기치 않는 논란이 벌어졌다. 원래대로라면 유승민이 코치의 품에 안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코치석에 앉아 있던 김택수가 오히려 선수인 유승민에게 먼저 안겨버린 것이다.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많은 이들로부터 ‘주객전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김택수 선수촌장은 축구와 골프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긴다. 미셸 위와 프로암 대회에서 만난 모습. 김택수 제공

김택수 선수촌장은 축구와 골프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긴다. 미셸 위와 프로암 대회에서 만난 모습. 김택수 제공
김택수는 “절대 의도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나도 당연히 유 회장이 먼저 내게 안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기장에 펜스가 있지 않나. 유승민을 안아주러 가기 위해 펜스를 펄쩍 뛰어넘었는데 유 회장이 번개처럼 이미 눈앞에 와 있더라.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유 회장에게 안겨 있더라. 깜짝 놀라 다시 자세를 바꿔 내가 유 회장을 안아줬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7년간 국가대표 지도자를 지냈다.

선수, 지도자로 24년간 선수촌에서 살았던 그는 유승민이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되면서 선수촌장에 임명돼 다시 선수촌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가 선수, 지도자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자기관리다. 술은 마시지만 12시를 넘기지 않는다. 가능한 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잠을 충분히 잔다. 선수 때와 비교해 몸무게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많이 먹은 날은 그만큼 걷거나 뛰며 어떻게든 칼로리를 소모한다. 튀긴 음식이나 패스트푸드를 피하고 신선한 야채류와 해산물을 즐겨 먹는다.

허리 디스크로 수술을 세 차례나 한 그는 무거운 무게를 들지 않고 가벼운 근력 운동을 주도 한다. 또 하루에 1만 보 또는 1만 5000보를 걸으려 노력한다.

김택수의 선수 시절 모습. 동아일보 DB

김택수의 선수 시절 모습. 동아일보 DB

마음의 고향과 같은 선수촌의 수장으로 돌아온 그는 선수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훈련에 있어서만큼은 양보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선수 때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세계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한계를 넘는 훈련밖에 없다. 그렇게 노력해도 운이 따라야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다”라며 “가장 중요한 건 선수 스스로 깨닫고 하는 훈련이다.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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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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