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낮 12시, 경기도 성남 가천대학교 학생회관 '천원매점' 앞. 점심시간이 막 시작되자 계단을 따라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섰다.
줄은 학생회관 반 층 아래까지 이어졌다. 바구니를 든 학생들은 "오늘은 뭐 담을까" 하며 들뜬 목소리를 주고받았다.
입구에서는 학생증 QR을 찍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매대 위에는 짜파게티, 컵밥, 육개장, 3분 짜장, 청양만두, 냉동 새우볶음밥, 양치 세트 등 30여 종의 물품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손이 빠른 학생들은 컵라면을 바구니에 재빨리 집어넣었고, 인기 품목인 고추참치는 이미 '일시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학생들은 네 가지 물품을 고른 뒤, 학생증을 보여주고 계좌이체나 현금으로 천 원을 결제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진짜 싸다"는 탄성이 줄지어 터져 나왔다.
◇"와 진짜 싸다"…대학생 600명 우르르
현장 분위기는 뜨거웠다. 임우진(24·인공지능학과) 씨는 "오늘 처음 와봤는데 확실히 싸다. 인스타그램 보고 알게 됐는데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하다. 여러 가지를 싸게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원재연(26·전자공학과) 씨는 "마트보다 훨씬 싸다. 4개에 1000원이면 진짜 너무 싸다. 학과 친구들이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앞으로 더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영운(20·자율전공학부) 씨는 "일반 마트보다 최소 다섯 배는 저렴하다. 앞으로 열릴 때마다 자주 이용할 것 같다"며 "쿠팡 같은 인터넷 특가보다도 싼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물품을 챙겨 들고 삼삼오오 흩어져 곧바로 점심을 해결했다. 계단에 앉아 컵밥 뚜껑을 열고 젓가락을 드는 모습, 테이블에 모여 참치캔과 냉동만두를 나누는 모습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임도아(24·산업디자인학과 )씨는 컵밥을 먹으며 "평소 점심·저녁에 2만원 가까이 쓰는데 오늘은 1000원으로 두 끼를 해결했다. 1만9000원이 세이브 된 셈이다. 너무 만족스럽고,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최고의 복지"라며 웃음 지었다.
학생들의 쏟아지는 호평에 운영을 맡은 학생회도 보람을 표했다. 가천대 총학생회 소속 손현기(21·경영학과) 씨는 "등록금과 연계된 예산으로 운영하는 만큼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일"이라며 "초기에는 슈넬치킨 같은 냉동식품이 인기가 많았고, 여성 학생들 사이에서는 클렌징폼이 잘 나갔다"고 설명했다.
가천대 관계자 역시 "화·목 이틀 운영하지만 준비하는 600명 분량이 매번 매진된다. 11시 30분부터 대기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라며 "학생들의 선호를 반영해 품목을 꾸리고 있다"고 전했다.
천원 매점은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도입한 사업이다. 고물가 시대에 생활비 부담이 커진 대학생들을 위해 시중가 대비 90% 이상 할인된 먹거리와 생필품을 네 가지씩 묶어 1000원에 판매한다.
가천대는 매주 화·목, 평택대는 화·수·목 요일별로 총학생회 주관으로 운영한다. 지난 3일 개점 이후 가천대에서는 축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 600~650명이 몰렸고, 평택대도 첫날 109명에서 10일에는 180명으로 늘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운영 재원은 NH농협은행 경기본부가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경기도사회복지협의회에 지정 기부한 3억 원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연말쯤 이 예산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얇은 지갑' 대학생들, 천원매점에 몰리는 이유
특히 천원 매점은 대학생들의 '얇은 지갑'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23년 알바몬이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20대 28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아르바이트 중인 2004명의 월평균 소득은 66만7000원에 불과했다.
'용돈벌이'수준의 아르바이트 소득으로는 치솟는 물가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들은 천원매점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복지라고 평가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줄고, 키오스크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하루 세끼는 꼬박꼬박 챙겨야 한다. 그러니 먹거리를 네 개 천 원에 판다고 하면 생존을 위한 '오픈런'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혈기 왕성할 때라 더 많이 먹어야 하는데 돈은 부족하다. 저렴할 때 사뒀다가 끼니마다 밥이나 라면으로 변형해 먹을 수 있는 점도 인기 요인"이라며 "천 원 아침밥은 시간 놓치면 이용하기 어렵지만, 천원 매점은 사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수요가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