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재석 경사 순직 당시 일지, 증언과 달라
근무 규칙 어기고 ‘6시간 휴식’ 부여한 듯
해루질로 갯벌 고립 사고, 5년간 288건
밀물 속도 빠른 걸음 맞먹어 순식간에 휩쓸려
지난달 8일 충남 당진에서 “해루질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 50대 남성이 실종됐다가 이틀 만에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5월에는 전북 부안에서 해루질하던 여성 2명이 물에 빠져 1명이 사망했다.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 고(故) 이재석 경사(34)가 갯벌에 고립된 중국 국적 남성을 구하려다 순직하면서 해루질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최근 5년간 해루질 중 갯벌에 고립돼 사망하거나 실종된 인원은 38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 최근 4년간 갯벌 고립 사고 288건
해루질은 갯벌에서 조개, 낙지, 게 등 해산물을 잡는 행위다. 조개 등의 활동이 활발한 밤 시간대에 많은 사람들이 해루질을 즐긴다. 그러나 물때와 조석(潮汐)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갯벌에 들어가면 매우 위험하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갯벌의 출구가 제한되고 시야가 어두워 방향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밀물 속도는 시속 7~15㎞로 성인이 빠르게 걷는 속도와 맞먹는다. 발이 갯벌에 빠지면 이동 속도가 늦어져 건장한 성인도 순식간에 물살에 휩쓸릴 수 있다. 영흥도는 해루질 명소로 꼽힌다. 사고 전날 밤에도 200명 넘는 시민이 갯벌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달까지 전국에서 갯벌 고립 사고는 총 288건 발생했고, 이 중 38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2021년 83건, 2023년 67건 등 매년 두 자릿수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해경이 구조한 시민은 430명에 달한다.
해경은 인천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드론으로 갯벌을 순찰하고, 위험 구간에 경고 방송을 송출하는 등 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인파에 비해 인력과 장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갯벌은 면적이 넓고 시야가 트이지 않은 곳이 많아 실시간 모니터링에도 한계가 있다.올 5월 국회에는 지자체가 야간 해루질 시간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박건태 한국해양안전협회장은 “해루질은 단순 취미로 생각하기 쉽지만 위험성이 큰 만큼 안전 장비 착용을 의무화하고, 시간·구역 제한과 드론 순찰 확대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실대응·은폐’ 의혹 해경서장 등 대기발령
이날 당시 근무일지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동료 4명은 “오후 9시부터 오전 3시까지 6시간 동안 쉬었다”고 밝혔지만, 근무일지에는 6명이 3시간씩 교대로 휴식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파출소 운영 규칙상 야간 휴게 시간은 3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외부 기관에서 엄정히 조사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해경은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꾸린 진상조사단 운영을 중단했다. 해경 관계자는 “조사 방향이 정해지는 대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 한국 해경이 중국 공민을 구하다 순직했다”며 “삼가 그의 안타까운 사망을 애도하고 그의 가족에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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