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오픈AI도 한국선 투자 못 받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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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오픈AI도 한국선 투자 못 받을 판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제틱AI는 최근 한 반도체 대기업으로부터 온디바이스 AI 기술 협업을 제안받았다. 수억원대 매출을 한 번에 올릴 기회였다. 문제는 회사의 주요 인력이 석 달 동안 대기업 프로젝트에만 매달려야 한다는 것. 하루가 다르게 AI 기술이 발전하는 상황이라 다른 프로젝트에 몇 달을 쓰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선 밀릴 가능성이 컸다.

수많은 고민 끝에 제틱AI는 결국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김연석 제틱AI 대표는 “대기업 외주업체가 되는 대신 더 넓은 시장을 노리겠다고 했을 때 이 도전을 응원해주는 국내 투자사는 많지 않았다”며 “창업 1년밖에 되지 않은 기업에까지 ‘매출이 얼마냐’고 묻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당장의 실적을 요구하는 국내 투자 기준 때문에 큰 성장 기회를 포기하고 적당한 프로젝트로 매출을 채우는 AI 스타트업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 2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최한 ‘AI 스타트업 투자 활성화 간담회’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원희 메타팩토리코퍼레이션 대표는 “회수를 빠르게 하고 싶은 투자사들을 이해한다. 하지만 기술 스타트업은 수익화 계획을 처음부터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국내 투자사 기준으론 오픈AI도 투자받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해 50억달러의 영업손실을 낸 오픈AI는 구체적인 수익화 계획을 요구하는 한국에선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다.

상장 후 외부 자금을 유치할 길이 막혀 있다는 토로도 쏟아졌다. 상장 AI 기업인 플리토의 이정수 대표는 “후배들에게 국내 상장 대신 해외 매각을 하라고 권한다”며 “벤처캐피털(VC) 펀드는 상장사엔 투자할 수 없고, 기관은 지분을 팔아버려 오버행이 생긴다. 새로운 투자가 막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황태일 글로랑 대표는 “플랫폼업계는 재구매율이나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 같은 투자의 기준이 되는 평가 지표가 명확하다. 하지만 AI 서비스를 평가하는 신규 지표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투자사들이 당장의 매출이나 대기업 계약 여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펀드 출자 기준이 최신 AI 기술 트렌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2일 정부는 ‘경제성장전략(경제정책방향)’을 통해 AI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출자를 허용하고 개인용 벤처투자 공모펀드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문제는 새롭게 도입하는 예산과 제도가 실제 시장에서 제대로 쓰이고 굴러갈 수 있느냐다. AI 스타트업 대표들의 직언을 허투루 듣지 않아야 새 정책도 현장에서 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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