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도덕적 해이' 방치하면서 돈은 금융권이 내라는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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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도덕적 해이' 방치하면서 돈은 금융권이 내라는 서울시

“채무자 빚을 70% 이상 깎아주고 이걸 금융권이 책임지라는 게 말이 됩니까. 성실하게 이자 갚는 사람만 바보 만드는 거 아닌가요.”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4일자 본지 1면에 보도한 ‘소상공인 빚 4700억 떠안은 서울신용보증재단’ 제하의 기사에 대해 국내 은행 관계자는 이같이 반문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매년 막대한 출연금을 금융권에서 받아 운영한다. 출연 규모는 2020년 1244억원에서 2021년 720억원, 2022년 680억원으로 줄었다가 2023년 849억원, 2024년 884억원으로 다시 늘었다. 올해는 974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도 최근 60억원을 냈다. 사실상 민간 자금이 ‘돈줄’인 셈이다.

문제는 쓰임새다. 채무조정 제도를 통해 ‘금융취약계층’으로 분류되면 원금의 70~9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고령자(70세 이상)뿐 아니라 대학 재학생, 만 34세 이하 미취업 청년, 군 복무자, 노숙인, 교도소 수감자 등까지 포함된다. 생계가 곤란한 이들을 돕자는 취지는 타당하지만, 정상 노동이 가능한 계층까지 포괄해 사실상 ‘빚 탕감 루트’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실히 빚을 갚는 채무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유다.

의사결정 구조도 취약하다. 서울신보 이사회와 심의 라인에는 서울시 관료 출신이 포진해 있다. 채권·금융 전문가 비중은 낮다. 고도의 금융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자리에 정무적 판단이 우선하다 보니 엄격한 심사보다 ‘넓은 구제’로 흐를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민간 은행 또는 카드사에서 이런 식으로 채권이나 리스크 관리를 했다가는 당장 최고경영자(CEO)의 목이 날아갈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제기구들도 한국의 과도한 공적 신용보증을 꾸준히 경고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공적 보증이 시장 원리를 왜곡시켜 결국 국민 세금으로 부실을 메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는 정부가 소상공인 대출을 대신 갚아주는 일 자체가 드물다.

서울신보는 최근에서야 대책을 내놨다. 지난 7월부터 ‘불성실 채무자’ 명단을 만들어 보증 1년 안에 부도가 나거나 상환 노력 없는 채무자는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에서 제외했다. 채권 소각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후약방문’에 그칠 것이라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공적 보증제도의 본래 취지는 저소득층과 사업 실패로 좌절한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빚 탕감 구조로는 차주의 성실 상환 의지를 약화시키고 도덕적 해이만 더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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