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비례범칙금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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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5.29 17:46 수정2025.05.29 17:46 지면A39

[천자칼럼] 비례범칙금제 논란

핀란드 노키아의 안시 반요키 전 부사장은 2002년 헬싱키에서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를 타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시속 50㎞ 도로에서 75㎞로 달리다가 딱지를 뗐다. 경찰은 그에게 14일 치 연봉에 해당하는 11만6000유로(약 1억803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핀란드 독일 등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일부 유럽 국가에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차등해서 매기는 비례범칙금제도가 있다. 고소득자가 소액의 범칙금을 가볍게 여기고 반복적으로 법을 어기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벌금의 상한선이 없다 보니, 반요키 전 부사장처럼 억대의 범칙금을 내는 사례도 나온다. 한국도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6년부터 경제적 능력에 따라 벌금을 달리하는 제도 도입을 여러 차례 검토했다. 2019년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추진한 전례가 있다.

비례범칙금제 제도화에 성공한 나라는 많지 않다. 일단 범법자의 재산과 소득을 파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영국은 1992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가 반년 만에 폐기했다. 소득이 불분명하고, 은닉 재산이 많은 범법자가 경미한 처벌을 받는 일이 되풀이돼 국민의 불만이 커진 영향이었다. 경제적 여건을 양형의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나라도 많다. 처벌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현행 형법 51조엔 범인의 연령·지능·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동기 등 여러 양형 기준이 열거돼 있는데, 소득이나 재산 같은 경제적 요소는 빠져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비례범칙금제를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버스전용차로 위반에 국한해 비례범칙금제를 시범적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이 공약집에 들어 있다. 시범 운영을 통해 국민 반응을 살핀 후, 확대 적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례범칙금제가 성공하려면 선행 조건이 많다. 국민의 자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 현행 법체계와의 충돌 문제도 살펴야 한다.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했다가 부자를 향한 적개심만 부추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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