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제작된 홍콩 영화 ‘중경삼림’엔 “만약 사랑에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나는 그 기한을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주인공 금성무의 독백 장면이 나온다. 금성무는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날짜 5월 1일을 기억하기 위해 유통기한이 이날로 적힌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지만 정작 그날이 다가올수록 물건을 찾을 수 없다. 유통업체가 다 치워버려서다.
한국에서 유통기한 표시제가 시작된 것은 1985년이다. 정부는 식품위생법을 고쳐 식품류 포장지에 유통기한을 적도록 의무화했다. 유통기한은 통상 식품 제조 후 상하기 시작하는 시기보다 60~70% 앞선 시점까지로 정해졌다. 마트 등 유통업체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은 수거해 폐기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유통기한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아직은 멀쩡한 식품을 일찍 버리다 보니 폐기물이 쌓이고 처리비용도 상당하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왔다.
이에 정부는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게 제도를 바꿨다. 2023년 1년 계도기간을 거쳐 2024년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소비기한은 먹어도 되는 기한을 가리키며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의 80~90% 정도로 설정돼 유통기한보다 길다. 다만 우유 등 일부 품목은 당분간 유통기한을 표시토록 예외를 인정했다.
CJ가 소비기한이든 유통기한이든 마감이 가까워진 가공식품을 한데 모아 싸게 파는 실험에 들어갔다. 최근 송파구의 한 아파트 상가에 ‘지구 스토어’라는 매장을 열고 CJ가 만든 가공식품 중 폐기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정상가보다 50% 이상 할인해 판매하고 있다. 동네 마트에서 그날 만든 김밥, 초밥, 튀김류 등을 저녁에 ‘떨이’로 싸게 파는 것과 같다. 영국 유통업체인 테스코는 마감이 임박한 음식을 밤 9시 반부터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CJ의 실험에 시장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먹어도 문제없는 식품을 싸게 살 수 있고, 폐기물 줄이기에 동참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CJ는 석 달간 운영해 보고 확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알뜰 소비 풍조와 잘 맞을 것 같은 분위기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