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황인찬]쌀 300g도 파는 日, 한국 쌀도 맞춤형 판매 전략 필요

18 hours ago 7

황인찬 도쿄 특파원

황인찬 도쿄 특파원
적게 사서 남기지 않고 요리해 먹는 게 일본의 식문화다. 슈퍼에선 대파 한 줄기, 마늘 한 통, 배추 4분의 1쪽 등을 쪼개 판다. 한 끼 해 먹으면 남는 게 없다. 일본에 오면서 한국보다 용량이 작은 냉장고를 샀다. 그래도 공간이 크게 부족하지 않다.

적게 사고 바로 소비하는 일본

쌀도 그렇다. 한국은 20kg, 10kg짜리를 판다. 일본에선 4, 5kg 쌀이 가장 많이 팔린다. 그런 일본인들이 최근 한국에 왔다가 평소에 잘 접하지도 않는 큰 쌀 포대를 사들고 온다. 일본 쌀의 가격이 급등해 한국 쌀보다 3배 비싸진 탓이다. 한국 쌀을 살수록 이득이니 수화물 한도까지 꽉꽉 채워 사 오는 사람도 많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에 한국 쌀을 가져오기 위해 수출식물검역증명서를 받은 쌀 물량은 1250kg이었다. 지난해 같은 달(16kg)보다 77배나 늘었다. 증명서 발급 건수도 6건에서 119건으로 뛰었다. 올해 1분기(1∼3월) 증명서 발급 건수는 193건(1855kg)으로, 이미 지난해 한 해 규모(174건·1310kg)를 훌쩍 넘겼다. 이러다 보니 일본 관광객에게 한국 쌀이 구매 필수 아이템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일본 언론도 서울의 대형 마트에서 쌀을 구입해 귀국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뉴스로 전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나의 한국 쌀 구입기’ 같은 체험 글이 넘쳐난다. “쌀이 무거워 들고 다니는 게 힘들었다. 마치 근육 운동을 하는 기분이었다”는 생생한 후기가 공감을 얻는다.

사실 쌀을 가져오려면 검역 절차를 거쳐야 하고, 공항에도 평소보다 일찍 가야 한다. 이런 불편한 점이 있지만 한국 쌀을 사오면 가격 이점이 매우 크다. 일본 관세 당국은 개인당 1년에 100kg까지 쌀에 대한 면세를 인정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0kg 정도다. 면세 한도까지 사온다면 2인 가족이 ‘면세 쌀’을 먹으며 연간 쌀값을 70%가량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이달 8일에는 한국 쌀이 관련 통계 작성 후 35년 만에 일본에 처음 수입되기도 했다. NHK를 비롯한 일본 주요 언론도 이런 변화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다만, 정식 수입되면 kg당 341엔(약 3400원)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달 수입된 10kg 상품은 9000엔(약 9만 원)에 팔렸다. 관세가 더해져 가격이 올랐지만 관심은 뜨거웠다. 판매 열흘 만에 첫 수입된 2t이 품절됐다. 내달 추가로 10t이 일본에 수입된다. 일본의 쌀값 폭등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쌀에 대한 일본 소비자의 관심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쌀, 공항에서 소포장으로 판다면
한국에 온 일본인들에게 쌀을 더 적극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 보면 어떨까. 소포장에 익숙한 일본인 특성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어른 주먹만 한 300g 쌀 포장도 낯설지 않다. 한국 쌀도 이렇게 무게를 다양하게 소포장해서 판다면 여행 가방에 남는 공간 만큼 딱 맞춰 살 수 있고, ‘근육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게다가 공항에서 쌀을 팔면 수고를 더 줄일 수 있다. 더불어 쌀의 공항 검역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국 쌀 수출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에게 전달했더니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만 아이디어를 실무자 등과 공유했지만 아직 실현되지는 못했다고 했다. 한국 쌀이 일본 열도를 밟은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여러 후속 조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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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도쿄 특파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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