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초등학교 졸업앨범 구입 과정에서 딥페이크 예방 서약서가 등장하게 된 걸까. 최근 사회적으로 졸업앨범 속 사진을 활용한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가 늘자 학교 측이 나름 범죄 예방차 내놓은 대비책이었던 것이다.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만연한 현실을 보여준 하나의 예라고 본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10대들에게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고 배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딥페이크 제작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면 합성사진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0초 내외다. 그렇다 보니 지난해 9월 경찰청이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딥페이크 범죄 현황’에 따르면 딥페이크 영상물을 만들어 배포해 입건된 10대 청소년은 2021년 51명, 2022년 52명, 2023년 91명, 지난해 1∼7월 131명으로 3년 새 2배 이상이 됐다.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역시 10대, 20대 젊은 층의 비율이 높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발간한 ‘2024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총 1만305명 중 10대와 20대 피해자는 8105명으로 78.7%를 차지했다. 특히 1020세대의 합성·편집 피해는 전체 피해 건수의 92.6%에 달했다. SNS를 활발히 이용하는 연령대에 피해가 집중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딥페이크 성범죄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처럼 확산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정부의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사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최근 3년간 딥페이크 범죄 발생 대비 검거율은 2021년 47.4%, 2022년 46.9%, 2023년 51.7%로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처벌 수위도 약하다. 여성정책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1심 판결 47%가 집행유예였다. 또 피의자가 14세 미만일 경우 촉법소년에 해당돼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법률상 허점도 존재한다.
교육부는 이달 22일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성폭력 SOS 가이드’를 배포했다. ‘내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면’ ‘친구나 주변인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내가 한 행동으로 문제가 생겼다면?’ 등으로 사례를 나눠 대응책 등을 제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가이드라인 배포보다 솜방망이 수준인 관련 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게 더 좋은 해결책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강렬한 처벌을 뒷받침할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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