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은 국경에서 멈춘다(Politics stops at the water’s edge).” 1948년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아서 반덴버그 상원 외교위원장이 민주당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외교정책 지지를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 등 여권의 여러 인사가 체코 원전 수주를 ‘덤핑 수주’로 폄하하는 야권을 향해 외교·안보 문제만큼은 초당적 협력을 하자고 촉구하며 꺼낸 말이기도 하다. 국익 앞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당연한 명제가 우리 정치권에선 잘 먹히지 않는다. 경제와 안보의 두 축이 흔들리는 국가적 위기를 눈앞에 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웃나라 일본의 야권은 트럼프발(發) 관세폭탄이라는 ‘국난’을 맞아 정부와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낮은 지지율과 초선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돌린 스캔들로 곤경에 처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 대한 정치 공세를 접고 ‘일시휴전’을 택했다. 협력할 건 협력하며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 등 대응책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야당으로서는 자민당을 몰아세울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지금이 정쟁이나 벌일 때냐는 유권자의 매서운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보다 1%포인트 낮긴 하지만 24%의 상호관세를 얻어맞은 일본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 기준 210조원 규모로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한다. 최대 수출 품목인 자동차·부품은 25%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90일 유예된 상호관세가 그대로 시행되면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2.9%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관세 문제는 국난”이라는 이시바 총리의 말이 과장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4일 그를 만난 야당 대표들은 힐난 대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전체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큰 한국의 정치권은 일본과 완전히 반대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6일 경제팀 수장인 최상목 부총리에 대한 탄핵 청문회를 강행한다. ‘국난’에도 정략 외에는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 진심으로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