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오차즈케에 김치 한 점, 재일교포가 사는 방법

1 day ago 6

조선인의 삶 돌아본 에세이
한식 때문에 차별 겪었지만
韓日 문화 모두 즐기며 극복
◇마지막엔 누룽지나 오차즈케로/후카자와 우시오 지음·김현숙 옮김/312쪽·1만8800원·공명


196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인 저자에게 김치는 늘 숙제였다. 일본에서 김치는 예전엔 ‘조선 절임’이라고 했고, ‘김치 냄새 난다’는 말은 조선인에 대한 대표적인 멸시의 표현이었다. 그의 어머니도 셋집을 구하다 집주인으로부터 “김치 냄새가 나서 도저히 집을 빌려줄 순 없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저자도 어릴 적 집 냉장고에서 항상 김치 냄새가 풍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소설가인 저자가 평생 먹어온 것들을 통해 자신의 삶과 가족사를 되돌아본 에세이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인생의 단계마다 함께한 음식을 통해 들려준다. 부제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했던 혀끝의 기억’인 이유다.

그의 가정에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버무려졌고, 음식도 평생 두 나라의 것을 오가며 살았다. 재일 한국인 2세로 올해 87세가 된 어머니는 평생 남에게 한국인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밖에서 마늘 냄새를 숨기려고 마늘을 적게 넣어 샐러드처럼 먹는 김치를 특별히 고안했다. 식구들이 아플 땐 곰탕을 끓여 먹였는데,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까지 꼬리뼈를 사러 다니곤 했다.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산다는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양국 사이에 놓인 처지를 의미했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조차 크고 작은 갈등으로 이어지곤 했다. 저자가 6세 무렵의 일이다. 아버지가 갑자기 김치를 젓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아이들에게 김치를 먹여!”라고 어머니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김치를 된장국에 씻어 매운맛을 희석한 뒤 밥그릇에 올려줬다. 저자는 공포에 떨며 씻은 김치를 흰 쌀밥과 함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옆에 있던 언니는 김치를 먹자마자 바로 토해 버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당신이 아이들을 한국인으로 제대로 키우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며 식탁을 뒤집어엎고 말았다. 이처럼 책 속에는 일본에 뿌리내리고 살면서도 지독할 만큼 한국 음식과 문화를 고집했던 친지들의 모습과 그로 인한 갈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늘 이리저리 흔들리며 확고한 귀속의식 없이 살아야 했던 저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김치를 변형해서 즐기게 됐고, 엄한 아버지와 희생적인 어머니를 용서하는 어른이 됐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규정하든 나는 그냥 인간으로서 나이며, 두 문화를 모두 즐기는 나’라는 인식으로 나아간다.

저자는 최근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절임류가 김치라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흔 살을 바라보는 저자의 어머니는 지금은 한류의 영향으로 김치를 비롯한 한국 음식을 어디서나 팔고 있기에 ‘마음 놓고 마늘을 많이 넣은 김치를 먹을 수 있고, 쉽게 꼬리뼈를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며 흐뭇해한다고 한다. 오늘 내가 먹는 것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2012년 소설 ‘가나에 아줌마’로 일본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책의 향기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내손자 클럽

    내손자 클럽

  • 이호 기자의 마켓ON

    이호 기자의 마켓ON

  • 어린이 책

    어린이 책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