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라오어에는 ‘산’이라는 단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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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케일럽 에버렛 지음·노승영 옮김/376쪽·2만2000원·위즈덤하우스

‘파란 하늘’이란 단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늘에 노을이 졌을 땐 붉고, 밤이 되면 칠흑같이 까매진다. 각종 기상 현상과 시간대에 따라 하늘은 무수한 색들을 보여준다. 파란 하늘이란 말은 물리적 실재에 대한 진술보다는 문화적 규범에 가깝다.

언어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다채로운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델라웨어대 언어학 교수다. 그는 언어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아마존 밀림에서 보내면서 인간의 언어와 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동안 언어학 연구가 서구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영어와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저자는 비영어권 언어들에 집중하며 언어 간 명백한 차이를 분석한다.

영어와 한국어는 ‘미래’를 ‘앞에 놓인 것’으로, ‘과거’를 ‘뒤에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약 300만 명이 쓰는 아이마라어는 ‘오래전’이란 단어를 ‘내 앞쪽으로 멀리 떨어진 시간’으로 직역할 수 있다. 과거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아는 존재이기 때문에 앞에서 볼 수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래를 말할 때는 ‘뒤에 있다’고 표현하고 뒤를 가리키는 몸짓이 미래를 상징한다.

생활 환경이 언어에 반영되기도 한다. 라오스의 라오어엔 ‘산’을 가리키는 말이 없다. 우뚝 솟은 산보다는 부드러운 능선과 골짜기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반면 밀림은 ‘성긴 밀림’과 ‘나무가 빽빽한 밀림’으로 구분한다. 아마존의 피라항족은 아버지, 어머니, 고모, 삼촌, 할아버지를 가리킬 때 한 단어를 사용한다. 이 외에도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색깔 낱말, 냄새를 표현하는 수십 가지 단어 등 우리가 몰랐던 언어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준다. “다양한 언어를 기록하는 것이 인간이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읽다 보면 인간의 가장 놀라운 유산 중 하나인 언어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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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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