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온실속 화초 vs 진흙탕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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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권의 실세로 불린 한 인사가 A기업 최고위 임원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B기업에서 일하는 엘리트 임원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추진한 적이 있다. 간략히 조사해보니 검증에서 크게 문제가 될 사안이 없었다. 대통령의 허락도 받았다. 대통령과 정권 최고위층이 직접 소속 기업 오너에게 양해도 구했다. 그런데도 무산됐다. 후보자로 거론된 이의 가족들이 “공직을 맡으려면 이혼부터 하라”며 결사항전한 결과다.

공직 제안에 펄쩍 뛰는 엘리트들

[차장 칼럼] 온실속 화초 vs 진흙탕 잡초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사석에서 “왜 감동을 주는 인사를 못 하느냐”고 물었다가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타박을 받은 적이 있다. 고위직을 한 명 뽑기 위해 1순위 적임자부터 제안하면 거의 50순위 정도까지 가야 승낙한다는 후보자가 나오는 실정인데 어떻게 감동을 주는 인사를 하냐는 얘기다. 제안을 거절한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신상털기 인사청문회, 보유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하는 백지신탁 제도, 공직자에 대한 따가운 시선, 민간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급여와 임기 종료 후 취업 제한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의 상호관세 관련 협상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가와 경제계에서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대표선수들의 이력을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노회한 승부사로 구성된 미국 측 대표단과 관료 또는 교수 출신으로 채워진 한국 측 대표단이 협상하면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한 고위공직자는 “우리 대표선수는 온실 속 화초, 미국 대표선수는 진흙탕에서 자란 잡초”라고 평가했다.

백악관이 무역 관련 협상 대표로 내세운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만 봐도 이력이 남다르다. 베선트 장관은 헤지펀드 창업자다. 그리어 대표는 국제통상법 전문가로 다국적 로펌의 대표변호사다. 무역 협상 관련 한 축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트레이더 출신 투자은행 최고경영자다. 외교가의 한 인사는 이들에 대해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 상대방 뒤통수를 치는 데도 아무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협상에 능숙한 이들”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 대표선수를 보면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학계 인사다. 베선트 장관과 상대해야 하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천상 관료다. 특정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여한구·유명희 등 과거 통상교섭본부장도 관료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역대 산업부와 기재부 장관을 봐도 대부분 관료 혹은 학자 출신이다.

석 달 뒤 본게임, 우리 대표선수는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면서 양국의 ‘본게임’은 3개월 이후 시작될 전망이다. 한국 대표는 그때 싹 바뀐다. 어떻게 하면 우리 측 대표를 미국 측 공세에 잘 맞설 ‘싸움꾼’으로 채울 수 있을까. 결국 해결책은 정치다. 무엇보다 60일 뒤 정권을 잡는 이들이 ‘내 편’을 앉히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캠프를 기웃거리는 교수들이나 후배들에게도 인정을 못 받으면서 한 자리를 바라는 관료 출신들도 멀리해야 한다. 정권을 잡지 못하는 당은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는 안 한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공직에 나서려면 보유 주식을 사실상 전부 매각해야 하는 백지신탁 제도를 손보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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