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반도체·폰 없는 전자회사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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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 반도체·폰 없는 전자회사의 경우

소니는 1979년 세계 최초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인 ‘워크맨’을 내놓으며 세계적 전자회사로 발돋움했다. 2010년까지 3억8000만 대나 팔린 워크맨을 필두로 TV, 캠코더, VCR 등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휩쓸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을 빼면 소니 브랜드를 단 가전제품을 만나기 힘들다. 워크맨의 아류인 ‘아하’란 브랜드로 소니를 따라하던 LG전자(당시 금성전자)에 역전된 지 한참 지났고,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LG전자는 이제 글로벌 가전업계 최강자가 됐지만 약점도 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도체는 25년 전 ‘빅딜’을 통해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넘겼고 1995년 시작한 휴대폰 사업은 2021년 철수했다. 이 시대 아이콘과 같은 사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없다 보니 가전시장에서 아무리 잘해도 LG전자는 글로벌 톱 전자기업을 꼽을 때 들어가지 않을 때가 많다.

B2B로 피벗 하는 LG전자

이런 LG전자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조주완 최고경영자(CEO·사장) 지휘 아래 기업 간 거래(B2B) 시장으로 빠르게 ‘피벗’하고 있어서다. 냉난방공조(HVAC), 상업용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스마트팩토리, 모듈주택, 신소재 등 사업 영역을 무한 확장하고 있다.

선언에 그친 게 아니라 실제 액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유럽 HVAC 시장을 공략을 위해 노르웨이의 온수 솔루션 회사 OSO를 인수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싱가포르의 초대형 물류센터에 HVAC 시설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전장 사업에선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 등 글로벌 톱 기업을 뚫었고, 미디어텍 등 반도체 회사와 협업해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빌트인 가전 B2B 시장을 뚫기 위해 전자업체인데도 북미에서 열리는 인테리어 박람회에 참가한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연어 양식장에서 쓰이는 신소재(퓨로텍)를 만들고 물을 적게 사용하는 세탁세제도 내놓고 있으니, 이쯤 되면 사명에 ‘전자’가 들어간 게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소니처럼 변신 성공해야

한국 가전회사들은 지금 위기다. 한참 아래였던 중국 기업이 턱밑까지 따라와서다. 중국의 로봇청소기 업체 로보락은 이미 국내 시장을 접수했다. 작년 상반기 시장점유율은 46.5%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애플에 이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3위로 부상한 샤오미는 얼마 전 서울 여의도에 매장을 내고 한국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TCL의 ‘반값 TV’는 온라인 매장을 휩쓸고 있다. 삼성과 LG가 10~20년 전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을 밀어낸 것처럼 중국 가전회사들이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탄탄한 내수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 회사들은 이제 ‘가성비’를 넘어 품질로도 글로벌 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LG전자가 새로운 시장을 찾아 헤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니는 삼성, LG 등 한국 가전회사에 밀리자 과감한 사업 재편에 나섰다. 2012년 매출의 70%를 차지한 전자제품 비중을 지난해 30%대로 떨어뜨리면서 빈자리를 콘텐츠(매출 비중 50%)로 채웠다. 그 덕분에 2012년 미국 뉴욕증시에서 평균 2.6달러였던 주가는 올 들어 26달러대 안팎으로 열 배 뛰었다. LG전자가 제2 소니가 될지, 대만에 팔린 샤프가 될지는 지금 주력하는 사업을 재편하는 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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